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 빅파마들이 선제적으로 통 큰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목적이 ‘리쇼어링(해외 생산 기지의 국내 복귀) 유도‘라는 점을 고려할 때 충분히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23일 제약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스위스 제약사 로슈는 미국 현지 생산과 연구개발(R&D) 인프라 확충을 위해 미국에 향후 5년간 500억 달러(약 71조 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로슈의 이번 투자로 건설 일자리를 6500개를 포함해 총 1만2000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로슈는 미국에 13개의 제조 시설과 15개의 R&D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2만5000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토마스 쉬네커(Thomas Schinecker) 로슈 그룹 최고경영책임자(CEO)는 “이번 투자는 미국 내 연구, 개발, 생산에 대한 로슈의 오랜 헌신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로슈의 다음 세대 혁신과 성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미국과 전 세계 환자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스위스산 의약품에 최대 31%의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있었다. 로슈는 이번 투자를 통해 미국 내 생산 기반을 강화해 관세 부담을 줄이고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높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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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글로벌 빅파마들도 미국 내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도 10일(현지시간)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내 의약품 제조시설에 5년간 230억 달러(약 32조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바티스는 이번 투자로 7개의 새로운 시설을 포함해 10개 시설을 통해 제조·연구·기술 입지를 확장하고 4000개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도 향후 5년간 4개의 새로운 생산 공장을 포함해 미국 내 제조역량 강화를 위해 270억 달러(약 38조 원) 규모로 확장한다고 발표했으며, 존슨앤드존슨도 미국 내 제조를 위해 550억 달러(약 78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의약품 관세 부과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해외 기업에 관세를 부과해 미국에서 의약품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미국 상무부는 14일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의약품과 그 원료에 대해 안보 조사를 개시했다. 해당 법은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 등 적절한 조치로 대통령이 수입을 제한할 권한을 부여한다.
글로벌 빅파마의 미국 내 투자 확대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조기 투자로 리스크를 줄이고 정책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전략적 행보가 많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 내 투자 소식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며 “약가 인하 기조는 보이지 않고, 의약품 관세 부담도 가중되고 있어 다국적제약사들은 인수합병(M&A)나 대규모 기술이전 투자를 확대하기보다는 자국 생산 시설 등에 투자 확대를 우선 검토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