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정년연장, 서둘기 전에 물어야 할 것들

입력 2025-04-2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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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영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공인노무사

고령화와 저출생. 이 예견된 위기는 이제 인구 구조 변화 수준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현행 60세인 법정 정년을 65세로 늘리자는 논의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 논의는 비단 일손 부족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연금 수급 문제까지 결부된다. 현재 정년은 60세지만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는 2033년이면 65세까지 높아진다. 이 기간 동안 소득이 없는 이른바 ‘소득 크레바스’가 발생한다. 건강 수명이 70세를 넘는 시대지만, 일할 능력과 의지를 가진 많은 고령층은 정년이라는 기준 때문에 구직 시장에서 어려움을 마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노인 빈곤율은 구직의 어려움과 구인의 필요성이 공존하는 이 양면적 현실을 드러낸다.

최근 정치권에서 앞다투어 정년연장 법안을 내놓는 것은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현행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은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는데(제19조 제1항) 이를 ‘65세’로 고치는 것이 법안들의 주요 골자다.

공감대 크지만 청년고용 위축 등 부작용

그러나 다른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고 법정 정년만 올린다면 어떤 결과가 기다릴까. 가장 큰 걸림돌로는 한국 특유의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이른바 ‘호봉제’가 꼽힌다. 이 체계에서는 오래 일할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구조이므로, 정년을 5년 연장하는 것은 임금 최고점에서 5년을 더 근무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때 추가 비용이 연간 30조 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했는데, 인건비라는 파이가 한정된 상황에서 이는 기업에 부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고,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도 작년 12월 정년연장이 청년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더욱이 정년연장의 혜택은 소수의 안정된 일자리에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정년제를 운영하는 사업장은 전체의 20% 정도에 불과하니, 다수 노동자에게는 정년연장이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즉, 이미 고용이 안정된 이들 위주로 정년연장의 혜택이 돌아가면서 안정적 노동시장과 불안정 노동시장 간 격차인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더 심화될 수 있다.

주요 선진국 중 민간 부문에 법정 정년을 두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다. 이런 독특한 공통점 때문에, 단계적으로 고령자 고용 문제에 접근해 온 일본의 방식은 우리의 입법 과정에서 중요한 참고가 된다. 일본은 ‘고연령자 등의 고용의 안정 등에 관한 법률’을 통해 2013년부터 기업이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세 가지 방식(정년연장, 계속고용제도 도입, 정년폐지) 중 하나를 택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계속고용제도’다. 계속고용제도는 정년퇴직자를 계약직으로 다시 고용하고 임금은 퇴직 전의 60~70% 수준에서 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2022년)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약 70.6%가 계속고용제도를 선택했다. 이런 유연성 덕분인지 일본의 60~64세 고령층 취업률은 2012년 57.7%에서 2022년 73.0%로 눈에 띄게 상승했다.

그러나 이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법적 쟁점이 따른다. 재고용 전후의 임금 및 처우 차이가 차별에 해당하는지 문제다. 그런데 일본 최고재판소는 관련 판결들(나가사와운수 사건, 나고야자동차학교 사건)에서 단순히 임금 액수 차이만 볼 것이 아니라 각 임금 항목의 취지나 정년 후 재고용이라는 특수한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 결과, 기본급이나 상여금 등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더라도 차별로 보지 않았다.

일본 판례의 이러한 흐름은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우리 법원 역시 정년연장과 맞물린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에서 비슷한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법원은 단순히 제도 시행 전후의 임금 액수만을 비교해 차별 여부를 판단하기보다, 고령자 고용 유지라는 사회적 목적과 기업의 현실적 부담 등을 함께 고려하는 시각을 보여준다. 이는 훗날 한국에서 계속고용제도가 도입된다면, 합리적 범위 안에서의 임금 조정이 법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임금체계 개편 선행…‘계속고용제’ 검토를

최근 한 여론조사는 흥미롭다. 세대를 불문하고 정년연장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79%로 절대 다수로, 정년연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높다(한국갤럽 2025년 3월 21일 발표). 하지만 법정 정년만 무작정 올리는 건 모래성을 쌓는 일이 될 수 있다.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라는 현실 위에서, 단순히 정년만 늘리는 방식은 기업 부담 증가, 청년고용 위축,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 같은 문제들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년연장이 성공하려면 직무, 성과에 기반을 둔 임금체계로의 개편이 필수다. 또한 일본처럼 기업이 각자 여건에 맞게 유연한 고용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길도 열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재고용 시 임금 차이 등 법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세심한 검토가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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