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도 공급망 관리 포함해 대응
부품ㆍ물류ㆍ철강 현지화율 제고
전기차, 생산-소비 함께 블록화

미국 관세정책에 맞서 공급망 전환이 가장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분야가 자동차 업종이다. 완성차 기업들은 미국에서 앞다퉈 생산량을 늘리고, 멕시코 물량마저 흡수할 조짐을 보인다. 소프트웨어(SW) 등 비물리적 분야도 글로벌 공급망 관리에 포함해 대응체계를 구축 중이다. 전기차는 생산과 소비구역이 덩어리처럼 붙어 구분되는 공급망 블록화가 나타나고 있다.
8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기아의 미국 판매차량(171만 대) 중 3분의 2(114만 대, 67%)는 관세리스크에 노출됐다. 현대차는 90만 대 중 61만 대를, 기아는 80만 대 중 53만 대를 미국 밖에서 들여오고 있다. 삼성증권은 연간으로 현대차 41억 달러(약 6조 원), 기아 33억 달러(약 4조 원)가 관세 영향에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의 각각 40%, 36% 비중이다. 금융당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 부과로 자동차 업계의 부가가치율이 4.5%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미중 무역분쟁에 이은 관세 리스크는 자동차 업계의 공급망 블록화를 부추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 생산능력 확대 등을 위해 올해부터 4년간 미국에 210억 달러(약 31조 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 중 61억 달러(약 9조 원)는 완성차-부품사간 공급망 강화에 투자된다.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생산능력 확대에 맞춰 부품·물류·철강 그룹사의 설비를 증설해 부품 현지화율을 높이고, 배터리팩 등 전기차 핵심부품의 현지 조달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달 백악관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핵심은 철강과 부품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미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닛산은 최근 미국 감산 계획 일부를 철회하기로 했다. 경영난에 빠진 닛산은 당초 이달부터 미국 2곳의 완성차 공장 일부 생산라인에서 감산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전기차(EV) 공급망 블록화도 가속화하고 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일본과 중국에만 둔 EV 생산거점을 미국, 태국, 아르헨티나 등 5곳으로 늘려 관세와 환율 변동 위험에 대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생선거점 다양화 배경으로 미국의 자동차 관세 등 세계 경제 블록화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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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공장이 없는 기업들은 도태될 위기에 직면했다. 영국 재규어 랜드로버는 미국 수출을 이달 한 달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에 공장이 없어 모든 물량을 영국에서 생산해 온 탓이다. 글로벌 판매에서 미국 비율은 약 25%에 달한다. 관세정책이 계속된다면 미국에 공장을 세우거나, 판매량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멕시코 공급망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의 상호관세 대상에서 빠졌지만, 자동차 등에는 품목관세 25%가 부과됐다.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스티어링 시스템과 전기차 충전 포트(연결 단자) 등 핵심 부품 규모는 매주 약 7억 달러(약 1조 원)로 추산된다.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닛산은 일부 차종의 멕시코 생산을 중단했다.
소프트웨어도 글로벌 공급망 관리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각국의 기술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미국 상무부는 2027년부터 중국·러시아와 연계된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차량의 수입·판매를 금지하고 2030년부터는 하드웨어까지 규제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소품종 대량적용이 가능했던 소프트웨어는 향후 다품종 소량적용 체제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그룹은 제너럴모터스(GM), 구글 웨이모 등과 협력하며 자율주행 및 커넥티드카 기술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김형주 LG경영연구원 경제정책부문 부문장은 “그동안 글로벌 생산분업을 주도한 기업들이 비용산정 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지고 복잡해져 경영전략을 상당 부분 수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