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밸류업하려면 기업에 방패도 줘야

입력 2024-10-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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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이탈리아 밀라노 거리에서 4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탄은 오른쪽 팔과 엉덩이, 왼쪽 어깨, 오른쪽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총구가 향한 건 세계적인 명품 패션브랜드 구찌 가문의 마지막 최고경영자(CEO) 마우리치오 구찌(1948∼1995). 경영권 분쟁에서 시작된 구찌가의 비극적인 결말이다. 1993년 가족 경영은 끝났고, 회사는 투자은행에 인수됐다. 이를 소재로 한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가 제작되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에서 좋은 결말은 없다. 특히 기업 가치를 훼손시켜 밸류업(가치제고)에 치명적이다.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지분 싸움이나 법적 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할 뿐 아니라 기업 이미지 훼손과 경영불안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고려아연과 영풍 및 MBK파트너스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이를 말해 준다. “근거 없는 억측이다” “현실성 없는 얘기다” “강력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 등등 험악한 표현을 써가며 펼친 공개매수 혈투 끝에 주주총회 표 대결 만을 남겨둔 상태다. 누군가는 경영권 분쟁의 승자로 남겠지만, 시장에서는 영업성적 악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있다. 더 나아가 나라 고려아연이 생산하는 비철 금속 분야에서 국가 공급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까지 있다.

경영권 분쟁에 신이 난 주식 투자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고려아연 주가 상승이 영업을 잘해서가 아닌 경영권 분쟁의 결과라서다.

기업투자나 고용에도 독이 된다. 자본시장에서 부실기업으로 낙인 찍히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은 물론, 해외 투자 유치도 어렵게 된다.

KT&G, SK스퀘어 등 적잖은 기업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경영권 방어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른바 ‘주주행동주의’로 포장된 펀드나 집단들이 호시탐탐 경영권 노리고 있어서다. 주주행동주의는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뜻한다.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한국의 주주행동주의 대상 기업 수는 작년 73개 기업(91건)에 달했다. 미국과 일본 , 캐나다 다음으로 많다. 특히, 한국 내 행동주의 펀드의 적대적 M&A 공격 횟수도 2019년 20건에서 지난해 80건 안팎까지 증가했다.

자본시장과 재계에서는 밸류업을 위해서라도 기업들에 방패를 쥐어줘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경제 3단체(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한국경제인협회)는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에서 상법개정보다 경영 활동에 활력을 넣을 ‘포이즌필’(경영권 침해 시도 시 기존 주주가 시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해 대응할 수 있는 권리) 등 경영권 방어 보장 제도 도입이 더 시급하다고 했다.

방패가 없는 국내 기업들의 현주소는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들이 포이즌필 등을 도입하고 있는 것과도 비교된다.

오너가 소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더 이상 우리 기업이 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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