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첫 삽 뜨는데 6년’…K-반도체 정책의 민낯 [샌드위치 된 韓 반도체]

입력 2024-03-03 13:38 수정 2024-03-07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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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용지 선정 이후 공장 착공도 못해
토지 보상 지연ㆍ용수 공급 문제 '첩첩산중'
용인시, 속도 내기 위한 '건축허가 TF' 구성
전문가 "지자체 아닌 정부 산하 컨트롤타워 필요"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주민 K 씨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개발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주민 K 씨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개발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발파로 소음이 심각한데 제대로 된 보상책 하나 없어요. 국가를 위해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건 좋지만, 여기 남아 있는 사람도 살아야 할 거 아니에요. (원삼면 주민 K 씨)

지난달 27일 찾은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 일대 거리에는 반도체 클러스터 개발을 비판하는 현수막으로 가득했다.

‘외부 폐기물 반입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긴 의혹 해명하라’, ‘주민 동의 없는 환경영향평가, 공사 중단하라’, ‘공사장 발파로 비산먼지, 진동, 소음 때문에 멍들어간다’ 등 개발 과정에서 주민들과의 소통이 부재한 점을 지적하는 내용이 많았다.

원삼면 토박이인 K 씨(70)가 사는 집은 클러스터 개발 공사 현장 바로 건너편에 있다. 그는 날마다 발파로 인한 소음과 진동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클러스터가 조성되는 일대는 모두 단단한 암반 지대로, 지난해부터 지반 평탄화를 위한 발파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K 씨는 “매일 12시경 발파가 시작되는데 제대로 된 차단벽이 준비되지 않아 소음이 심각하고, 분진도 집까지 넘어온다”며 “그런데도 용인시나 시행사에서는 피해 규모를 파악하거나 보상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주민들과 시위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찾은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 일대 거리에 반도체 클러스터 개발을 비판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지난달 27일 찾은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 일대 거리에 반도체 클러스터 개발을 비판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지난달 27일 찾은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 일대 거리에 반도체 클러스터 개발을 비판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지난달 27일 찾은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 일대 거리에 반도체 클러스터 개발을 비판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원삼면 일대에 조성되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는 축구장 581개와 맞먹는 415만㎡ 규모다. 이곳에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팹 4기를 비롯해 50여 개 소재·부품·장비 협력업체가 들어서게 된다.

당초 2019년 용지가 선정된 이래 2022년 공장 건설을 시작하려 했지만, 각종 규제와 절차로 연기돼왔다. 환경영향평가와 산업단지 계획 심의 등 행정 절차 통과에만 약 2년을 허비했다.

여기에 토지 감정 평가 방식과 보상액을 두고도 토지주들과 시행사 간 주장이 장기간 엇갈렸다. 시가에 턱없이 못 미치는 감정 평가액과 영업권, 이주 비용, 환경오염에 따른 위자료 산정 과정 등 곳곳에서 암초를 만났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스템이 일원화되지 않은 점도 개발을 지연 시키는 요소였다.

이는 모든 개발 과정을 정부가 주도하는 일본과 대비된다.

일본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구마모토현 대만 TSMC 반도체 제1공장의 공사 기간을 기존 4~5년에서 2년으로 크게 단축했다. 정부가 제1공장 전체 투자액의 40%인 4760억 엔(약 4조2141억 원)을 직접 지원했다. 인ㆍ허가 등 전 과정에서 시간을 줄이기 위해 7000여 명의 인력이 24시간 3교대로 일하기도 했다. 농지나 삼림 등 개발 제한 지역에서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분야 공장 건설을 허가할 수 있도록 토지 규제 완화도 추진해 통상 1년 걸리던 절차도 4개월로 줄였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 현장 전경 (박민웅 기자 pmw7001@)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 현장 전경 (박민웅 기자 pmw7001@)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용인시는 최근 뒤늦게 주택국장을 총괄 단장으로 한 ‘건축허가 TF’를 구성하고, 사업자 등과 매달 정기회의를 진행하며 인ㆍ허가 기간을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용인시는 올해 건축허가 등 각종 절차를 마무리하고, 내년 3월 팹1기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공장을 짓기 위한 첫 삽을 뜨기까지 무려 6년이 걸리는 셈이다.

다만 이러한 계획이 차질없이 실현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주민들과의 갈등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클러스터 내 폐기물 매립장 설치 문제까지 불거졌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환경영향평가 결정 사안에 매립장에는 산단 내부 폐기물뿐만 아니라 외부 폐기물까지 처리할 수 있도록 고지된 것이 화근이었다.

주민 P 씨(54)는 “용인시나 시행사 모두 산단 외부 폐기물까지 들이는 것에 관해 주민들에게 설명하거나 동의를 구한 적이 없었다”며 “이는 주민들의 알 권리를 무시하고, 기만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원삼면 주민들은 폐기물 매립장 조성 관련 반대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주민들이 폐기물 매립장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주민들이 폐기물 매립장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박민웅 기자 pmw7001@)

전문가들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속도를 높이기 위해선 개별 지자체가 아닌 정부 주도 아래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설치하고,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규복 한국전자기술연구원 부원장은 “반도체 팹 구축에는 용수, 전력, 폐수 처리, 주민생활여건 개선, 인력 수급 등 수많은 대책이 필요하다”며 “산업부, 교육부, 환경부, 과기부 등 여러 부처에 연결된 문제는 국무총리 산하의 직속 컨트롤타워를 두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 현장 전경 (박민웅 기자 pmw7001@)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조성사업 현장 전경 (박민웅 기자 pmw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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