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에세이] 애도 낳지 마?…가난이 '혐오 대상'이 된 사회

입력 2024-01-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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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30일 광주 북구 두암동 동문대로112번길 내 무허가 판자촌에서 한 주민이 집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6월 30일 광주 북구 두암동 동문대로112번길 내 무허가 판자촌에서 한 주민이 집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가난한 애들 특징’, ‘가난한 애들은 제발 애 낳지 마라’….

젊은 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게시글 제목이다. 빈자 혐오는 가난을 개인의 문제로 단순화하는 데서 출발한다. 빈자를 혐오하는 이들은 가난을 무능·무지와 게으름의 결과로 본다. 일부 흉악범의 성장배경이 불우한 점을 내세워 가난과 범죄를 동일시한다. 또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동은 무조건 불행하고, 사회 부적응자가 될 것이라고 단정한다.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몇 가지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첫째, 개인의 능력·지식·노력 등을 제외한 어떤 환경적 요인도 경제력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 둘째, 사회 구성원 간 경제력을 제외한 모든 환경과 조건(통제변수)이 같아야 한다. 셋째, 부모의 경제력과 아동 성장·발달 속도, 행복감이 예외 없이 정비례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선 어떤 전제도 들어맞지 않는다.

먼저 경제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등 경제위기가 10년 안팎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 그 충격은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에 집중됐다. 2020년 저금리에 기인한 투자 광풍은 일부 투자자를 벼락부자로 만들었다. 산업구조 변화, 수도권 쏠림으로 인한 지역경제 쇠퇴도 개인의 능력·지식·노력 등과 무관하게 경제력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부자와 빈자의 차이는 경제력뿐 아니다. 한국 사회에선 거주지역, 주택 유형과 점유형태, 학군, 부모 직업 등을 기준으로 ‘계층’이 나뉘고, 계층 간 교류·이동은 단절된다. 그 결과로 가난한 이들은 사회 주류집단에서 배제되고, 격리된다. 아동은 성장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차별과 멸시를 경험한다. 경제력뿐 아니라 모든 환경과 조건이 달라지는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과 아동 성장·발달 속도, 행복감은 반드시 정비례하지 않는다. 아동 성장·발달에 부모의 경제적·물질적 지원만큼 중요한 게 정서적 지원이다. 학술적으로도 정서적 지원과 통제 정도가 아동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이 다수 발표됐다. 부모의 경제력이 클수록 정서적 지원이 강해진다는 근거는 없다. 무엇보다 경제적·물질적 지원은 복지제도 발달에 따라 상향 평준화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6세부터 17세까지 보육·교육비 등 공적으로 지원되는 금액(공공이전)은 매년 1500만 원을 넘는다.

결국, 개인이 능력·지식을 쌓고 노력해도 가난해질 수 있으며, 빈자의 불행은 가난 자체보단 차별·멸시 등 가난을 바라보는 시선과 사회경제적 요인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부모의 가난이 유일한 독립변수로서 아동의 행복감을 낮추고, 일탈 가능성을 키운단 근거는 없다.

문제는 빈자를 혐오하는 이들 중 누구도 ‘진짜 문제는 차별·멸시니, 차별·멸시를 멈추자’고 얘기하지 않는 현실이다. 빈자에 대한 차별·멸시를 멈추면 가난에서 비롯된 사회문제도 줄 거다. 그렇게 되면 빈자 혐오의 명분도 약해질 거다. 그걸 걱정해 차별·멸시 문제는 덮어두고, 겉으로 드러난 일부 문제를 일반화해 혐오를 이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당장은 빈자 혐오가 ‘상대적으로 덜 가난한’ 이들에게 우월감을 줄 것이다. 다만, 장기적으론 혐오의 주체도 혐오의 대상이 될 거다. 혐오에 대한 죄책감이 없는, 혐오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꼭 가난만 혐오의 대상이 되란 법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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