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 기시다 총리의 방향성 상실한 중동외교

입력 2023-11-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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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유지(세종대 대우교수, 정치학 전공)

이스라엘 정세를 둘러싸고 일본 정부의 외교가 방향성을 잃은 모양이다.

미국과 유럽은 테러 비난과 이스라엘 지지로 일관하고 있지만, 일본은 원유 확보를 위해 아랍 국가들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대한 강한 비난 메시지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 주요 7개국(G7) 중 6개국 정상들이 10월 22일(현지시간) 공동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테러를 비난하는 한편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인정하고 인질 전원 석방을 촉구했다. 그런데 이 공동성명에 일본은 참가하지 않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처음부터 하마스에 대한 비난에 소극적이었다. 기시다 총리는 하마스의 대이스라엘 테러가 일어난 다음 날인 10월 8일 엑스(X·옛 트위터)에 하마스와 이스라엘을 나란히 거론하면서 “모든 당사자들에 최대한의 자제를 요구한다”고 투고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때 하마스의 ‘테러’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10월 9일 캐나다를 제외한 미·유럽 5개국 정상이 발표한 공동성명에도 일본은 동참하지 않았다. 비판이 일자 외무성 사무차관은 10월 11일 황급히 주일 이스라엘 대사를 외무성으로 초청해 하마스의 테러를 단호히 비난한다고 말하면서 일본에 대한 비판을 피하려고 시도했다. 그 결과 10월 12일 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낸 하마스 비난 성명에는 일본도 동참했지만 10월 22일 G7 정상의 하마스 비난 성명에는 다시 일본이 참여하지 않았다.

특히 일본 정부는 우호 관계에 있는 이란과의 관계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하마스를 지지하고 있는 이란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일본의 외교가 좋게 말하면 중립적, 나쁘게 말하면 방향성을 상실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란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왜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가? 근본적인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란 헌법을 보면, 국가 목표를 ‘이란 혁명의 이슬람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고 국내외 혁명의 지속을 확실히 하기 위해 필요한 기초를 제공한다’로 규정하고 ‘지구 상에서 피억압자에 의한 정부를 실현한다’고 정해 있다. 즉, 이란은 이란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피억압자들에 의한 이슬람 혁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해석이 가능한 국가 목표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세력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을 보면 자유민주주의와 이슬람 원리주의라는 이념적 대립 구도가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자는 이념적으로 상대를 수용할 의사가 없다. 다른 이슬람 국가들은 서양의 자유민주주의에 관용적인 나라들도 있고 자유민주주의 국가 중에서도 법을 어기지 않으면 이슬람문화를 수용한 국가들도 많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은 기본적으로 서로를 수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란이 지원하는 하마스는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하마스의 헌법인 하마스 헌장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이슬람이 이스라엘을 소멸시킬 때까지 이스라엘은 계속 존재한다. 팔레스타인은 이슬람 땅이다. (중략) 이슬람이 유대인과 싸워 그들을 죽일 때까지 심판의 날은 오지 않는다. 하마스는 세계의 시오니즘(이스라엘 건국 운동)에 대한 투쟁의 선봉이다’

즉 하마스 헌장에서 드러난 목표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와 유대인 자체를 지구 상에서 없앨 때까지 싸우는 데 있다. 대내외적 이슬람 혁명을 지향하는 이란과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섬멸하려는 하마스는 서로 통하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스라엘도 하마스의 섬멸과 팔레스타인 땅의 소멸, 즉 팔레스타인 땅의 완전한 이스라엘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대를 소멸시키려는 목표는 하마스와 똑같다.

미국, 이란, 이스라엘, 하마스, 모두 상대방을 악마화하여 지구 상에서 없애는 것을 ‘선’이라고 믿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즉 서로 ‘절대 악’이라고 상대를 규정해 섬멸하는 것이 그들의 ‘선’이 됐다.

한편 일본의 기시다 정권이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원유다. 그것은 기시다 총리가 엑스에 올린 글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기시다 총리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법에 의한 국제질서 확립’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국제법을 준수한다면 국가가 지향하는 목표는 문제 삼지 않고 어느 나라와도 우호적 국제관계를 갖는다고 공언한 셈이다.

결국 이런 이념 대 이념의, 말하자면 ‘종교전쟁’에는 일본은 대단히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 일본도 일왕 중심의 ‘신도(神道)국가 일본’을 유일한 진리로 내세워 아시아를 침략한 ‘종교국가’였다. 그러나 그런 일본의 이념은 태평양전쟁 패배로 사실상 사라졌다. 일본의 극우파가 그런 과거의 망령으로서 가끔 존재감을 드러냈고 그 실체가 아베 신조 전 정권이었으나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일본 극우파는 현재 일시적으로 후퇴한 상태다. 그러나 신도는 일본만의 종교이므로 세계적인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일본의 외교적 방침이 흔들리고 있는 근본적 이유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G7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처럼 개신교, 천주교 국가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일본이 철저한 하마스 비난으로 가기는 어렵다.

반대로 일본식 외교에는 장점도 있다. 중립적인 위치를 지키고 이념적 대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단점은 기독교나 천주교를 토대로 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일본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한국도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은 개신교, 천주교, 불교, 유교 등 많은 종교가 존재하는 나라다. 그러므로 한국은 하나의 종교적 신념으로 정권이나 국민이 움직이기 어렵다. 공산전체주의를 악마화하려고 해도 이미 1991년 소련 붕괴로 공산주의가 지구 상에서 사실상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북한도 이미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다. 한국이 국가적 목표를 세울 때 북한 공산전체주의 운운하는 것은 상대를 잘못 판단한 주장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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