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풍경] 의사가 환자가 될 때

입력 2023-07-05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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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병원에 가면 자신이 의사라는 사실을 밝힐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대개 말하지 않는다. 의사와 환자 관계에서 오롯이 환자의 위치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훨씬 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위급한 상황이라든지 큰 병이라면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해 서로가 의사임을 밝히는 것이 편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내가 의사라는 사실을 밝히면 갑자기 동료의사의 자리에 놓이게 되는 것이 불편하다. 또 한가지 이유는 소위 ‘진상’이라고 부르는 날 괴롭혔던 이들 중 의사가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3개월 미만의 영아가 열이 나면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신경이 곤두선다. 열이 나는 경우 간혹 목숨까지 위협하는 세균감염에 의한 패혈증, 뇌수막염 등이 숨어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속히 혈액검사, 소변검사, 뇌척수액 검사 등을 시행하게 된다.

레지던트 시절 소아응급실에서 내가 마주한 열 나는 아기의 아빠는 내과의사였다. ‘레지던트 따위’의 진찰과 설명은 믿을 수 없다며 교수님 진료실 문을 벌컥 연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혈액검사를 시행하는 동안 간호사들을 옆에서 노려보고, 뇌척수액 검사를 할 때도 나가 있으라는 나의 간곡한 부탁도 거절했다. 실패하면 나를 때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에 떨며 바늘을 찔러 넣었다.

발열로 입원한 5세 남아의 엄마는 신경과의사, 아빠는 성형외과 의사였다.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보채자 장중첩증이 틀림없다며 당직의사와 담당 간호사를 계속 불러댔다. 결국 당시 치프 레지던트였던 내가 끌려갔다. 진찰 소견이나 이야기를 들어봤을 때 장중첩증의 가능성은 떨어지니 지켜보자고 이야기했으나,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초음파로 확인하기 전까지 절대 굽힐 생각이 없었다. 결국 초음파를 봤고 결과는 정상이었다.

당연히 모든 의사 환자나 보호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인턴인 나에게 힘들겠다며 음료수를 건네주던 암투병 중이시던 내과 교수님, 의료진의 의견을 존중하고 자신의 말 한마디가 부담될까 말도 줄이던 소아청소년과 보호자, 몇 차례나 진료 볼 때 만났어도 조용히 웃으시기만 하던 가정의학과 선생님. 오히려 더 좋은 분들도 많았다. 의사이기 때문에 아는 것들, 짐작이 되는 의료진의 상황을 더 깊게 이해해 주셨다. 의사가 환자가 될 때, 나는 항상 내가 만났던 그들을 떠올려본다.유새빛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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