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을 위한 101] 한강낙조는 보행전용교에서 즐겨야

입력 2023-04-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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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

도시가 발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자원은 아마도 하천일 것이다. 인간 생존에 필요한 마실 물과 끊임없는 범람을 통해 비옥한 토양을 제공해 줄뿐더러, 라인강의 기적 또는 한강의 기적과 같이 한 나라의 놀라운 경제적 발전을 묘사할 때 하천명을 붙여 부르는 것을 보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최근 서울에서는 한강을 통해 서울을 ‘수변감성도시’로 만들려는 다양한 사업이 발표되고 있다. 홍수 때 피해를 주는 무섭기만 했던 물을 이수(利水), 즉 수리시설을 잘해 홍수나 가뭄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기술과 치수(治水), 즉 물을 잘 이용해 도시 내 부족한 공공공간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공익적 목적일 것이다. 이런 노력은 2006년에 추진했던 ‘한강 르네상스’를 떠올리게 하는데, 가까이하기엔 너무 멀었던 한강이 주말마다 시민들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보노라면 일부 사업들은 그나마 성공했음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 실행되지 않았던 사업들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있고, 벤치마킹 대상지였던 런던 템스강을 담당자들이 직접 시찰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런던아이와 비슷한 서울아이는 위치의 적정성과 표절 논란, 곤돌라는 바람이 많이 부는 우리네 기후를 고려하지 못한 점과 사업성 부족으로 논란이 됐다. 그나마 수상버스는 최근 김포 골드라인 혼잡 문제로 좀 더 실행 가능한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 사업들을 부활시켜 다시금 추진해보고자 했던 시도들은 변화된 도시환경에 대한 몰이해와 설익고 조급한 계획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강을 좀 더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시민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는 좋지만 충분한 기술적 사업적 검토가 진행된 후 발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 점도 도시행정의 큰 배움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작 아쉬운 것은 우리가 진짜 배우고 따라야 할 본질이 있는데, 이는 도외시한 채 겉만 번지르르하고 화려한 것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템스강에는 20여 개의 다리가 있고 그중 가장 아름다운 교량은 타워브리지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참고해야 할 것은 바로 시민들을 위한 보행전용교가 있다는 것이다. 런던 시민들이 차량으로부터 방해를 전혀 받지 않고 두 다리로 강의 남북을 안전하게 오가면서 템스강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2000년에 개통된 밀레니엄 브리지이다. 이처럼 훌륭한 시설이 그곳에 있는데 이를 눈여겨보지 않은 것인지 또는 실현 가능성이 적어 그런 것인지, 최근 발표된 사업에 들어있지 않은 것은 매우 큰 아쉬움을 가지게 한다.

한강에는 모두 31개의 교량이 있지만 보행전용교, 보행 및 자전거 공용교, 보행과 자전거 및 전철이 함께 있는 녹색교통중심교는 하나도 없이 오직 자동차를 위한 교량뿐이다. J. H. 크로퍼드가 도시의 목적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임에도, 자동차는 이동과 주차를 위해 너무 넓은 공간을 차지하기에 도시가 자동차에 필요한 공간을 제공하느라 팽창하도록 만들어 도시 본연의 목적을 저해한다고 하였는데, 한강 교량만 놓고 보면 그런 비판의 대상이 여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물론 보행을 통해 남북을 이동하거나 한강을 즐기고 싶다면 교량에 설치된 보행로를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그곳에 설치된 보행 및 자전거 도로 환경을 체험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광진교가 왕복 2차선 도로를 중심으로 한쪽은 자전거 도로, 반대쪽은 보행로로 되어있지만 온전한 보행전용이 아닌 절반의 노력일 뿐이다. 최근 잠수교를 중장기적으로 보행교로 하겠다지만 한강의 물이 불면 잠기는 이곳이 서울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보행전용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한강변의 노후화된 압구정아파트를 재건축해 그곳에서 나온 개발부담금을 가지고 서울숲과 연결되는 보행교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지만 재건축 조합원들이 동의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완료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낙조를 즐길 수 있는 한강 교량을 살피던 중 보행, 자전거 및 대중교통이 함께 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잠실철교다. 가운데로 전철이 지나가고 한쪽은 보행과 자전거 공용, 다른 쪽은 1차선 차로가 운영되는데, 평일에도 보행과 자전거로 한강을 즐기는 시민들로 북적북적한 곳이다. 잠실철교의 1차선 도로는 아는 사람들만 이용하는 곳으로 폐도시켜 기존 교통량을 잠실대교나 올림픽 대교로 분산시키고 자전거 도로로 전환하고, 보행 및 자전거 혼용공간은 보행전용로로 만들면 시민들이 더욱더 안전하게 한강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될 것이다. 더군다나 지하철이라는 대중교통과 더불어 보행 및 자전거가 함께 있는, 전 세계에도 찾아보기 힘든 녹색교통중심 교량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다 더해 한강과 테크노마트 앞 사이의 반지하 강변북로 일부를 덮개 공원화한다면 한강을 즐길수 있는 또 다른 명소를 만들 수 있는 적지가 될 것이다.

보행전용교가 어렵다면 기존의 교량을 녹색교통중심의 교량으로 전환시켜 시민들이 온전히 한강이라는 천혜 자원을 자동차의 방해를 받지 않고 즐길 수 있도록 한다면,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고자 하는 서울의 도시정책과 노력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도시발전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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