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분양’이라는 이름의 회색 코뿔소

입력 2023-04-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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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서울 아파트 분양가에 할인 딱지가 붙었다. 미분양이 계속 쌓이자 서울 아파트도 콧대를 꺾은 것이다. 서울 강북구 한 단지는 분양가를 35% 낮춰 최대 4억 원 저렴한 가격표를 내걸었다.

미분양 그늘이 짙어지자 다른 지역에서도 건설사들이 잇따라 할인 분양에 나서고 있다. 수도권인 경기 안양시와 대구에서도 10~25% 몸값을 낮춰 분양한다. 2월 기준 미분양 가구는 총 7만5438가구로 2012년 11월 기록한 7만6319가구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다 지어 놓고도 팔리지 않아 ‘악성’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한 달 만에 1008가구 늘어 8554가구에 달한다.

이렇듯 미분양 위험이 갈수록 몸집을 키워가지만, 정부는 미분양을 ‘회색 코뿔소’ 취급한다. 미분양이라는 큰 코뿔소가 코앞까지 찾아왔지만, 관리·감독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는 느긋하기까지 하다. 회색 코뿔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위험을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것을 비유하는 용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그동안 미분양 증가에 관련해 “미분양 물량 10만 가구까지 각오하고 있다”며 “(건설사의) 자구 노력도 없이 미분양 주택에 정부 개입을 요구하는 것은 엉뚱한 얘기”라고 했다. 또 미분양 대책을 묻는 말에는 “너무 앞서나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건설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장관 발언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정부 개입은 이르다는 인식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한국은행은 최근 지방소재 중소건설사 중 16.7%를 한계기업으로 진단했다. 대기업(9.4%)의 1.5배 수준이다. 한계기업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 못 하는 위기 기업으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도급순위 200위 이내 중견 건설사의 법정관리 신청 소식도 매주 들려오는 상황이다.

곳곳에서 경보음이 울린다. 정부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진짜 위기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만기 연장이 끝나는 6월 이후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분양이라는 이름의 회색 코뿔소가 건설업계를 한바탕 휩쓸고 난 뒤에도, 정부의 여유가 계속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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