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따요, 묶어요, 포장해요”...허리 펼 틈 없는 이레샤의 하루

입력 2023-01-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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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3-01-04 18: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이(웃)주(민) 노동자] 4-1. 하우스 옆 '하우스'

▲네팔에서 미용사로 일하던 이레샤는 한국 포천에서 시금치 수확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에는 듯한 추위와 과노동에 시달리지만 모국에서 자신의 미용실을 여는 게 꿈인 그녀는 "네팔 놀러 오세요"라며 연신 웃는다.
▲네팔에서 미용사로 일하던 이레샤는 한국 포천에서 시금치 수확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에는 듯한 추위와 과노동에 시달리지만 모국에서 자신의 미용실을 여는 게 꿈인 그녀는 "네팔 놀러 오세요"라며 연신 웃는다.

미용사 이레샤(29·가명) 씨는 한국에 온 후 낫을 들었다. 고향인 네팔 포카라에선 가위가 그를 먹여 살렸지만, 대한민국 경기도에선 낫이 생계 도구가 됐다.

지난달 6일 경기도 포천의 한 시금치 농장. 이레샤 씨의 하루는 아침 6시 30분부터 시작됐다. 살을 에는 듯한 찬 바람에 맞서려면 반팔과 목까지 올라오는 상의를 하나 더 입고 얇은 점퍼 2개에 두꺼운 점퍼까지 입었다. 윗도리만 총 5개다. 양말도 일반 양말로는 안 된다. 두꺼운 수면 양말을 신어야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지는 포천의 겨울을 날 수 있어서다.

작업장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초. 그는 같은 네팔인인 푸르나 씨, 베트남에서 온 프엉 씨와 함께 일터인 시금치 비닐하우스 바로 옆 비닐하우스에 산다. 덕분에(?) 통근 시간은 길어야 왕복 1분 내외다.

그는 4남매 중 장녀다. 막냇동생은 그보다 15살이 어린 14살이다. 생계를 위해 한국에 온 건 그의 가족에겐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레샤 씨는 “(가족) 보고 싶어도 어떡해. 돈 있으면 OK(오케이). 근데 돈 없으면 어떡해”라고 했다.

이레샤 씨는 푸르나·프엉 씨와 한 조를 이뤄 시금치를 따는 게 주 업무다. 시금치를 수확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도구는 낫과 다리 사이로 끼워 엉덩이에 걸치는 ‘쪼그리(농작업용 의자)’다. 걸을 때마다 쪼그리가 엉덩이에서 좌우로 씰룩이는 모양새는 우스꽝스럽지만, 쪼그리가 없으면 몸의 하중이 무릎에 쏠려 관절염을 앓기 딱 좋다.

그는 자기 일을 네 마디로 설명했다. “시금치 따요. 묶어요. 슈슈슉(넣어요). 박스 포장해요.” 이레샤 씨의 말처럼 시금치 수확은 단순 반복 노동이다. 시금치 밑을 낫으로 깊게 찔러 넣어 뿌리를 자르고, 딴 시금치의 마른 잎과 잔뿌리를 정리해 박스에 담는다.

하지만 일이 말처럼 간단치 않다. 땅바닥에 있는 시금치 밑동을 자르느라 이레샤 씨는 일하는 내내 하늘 한번 볼 틈이 없다. 온종일 고개를 처박고 허리는 굽힌 채 시금치 찌르기에 집중한다. 낫질 수백 번을 하다 보면 4kg짜리 박스 하나에 시금치가 가득 찬다. 시금치가 가득 찬 박스를 포장할 때에야 이레샤 씨는 굽혔던 목과 허리를 겨우 편다.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9시간 동안 시금치만 보는 이레샤 씨는 몇 박스나 채웠냐는 질문에 “몰라 몰라. 많아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수확한 시금치를 셀 여력도 없다. 또 다른 작업조인 한국인 아줌마들은 이레샤 씨를 보면 “빨리빨리 빨리”라고 말한다.

퇴근 시간이 되면 그는 비닐하우스 곳곳을 다니면서 관수기(灌水機)를 켠다. 작업이 끝나면 아직 따지 못한 시금치에 물을 줘야 다음 날 아침 싱싱한 시금치를 딸 수 있다. 관수기를 켠다는 건 그도 이제 ‘OFF 모드’를 켤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그의 지인은 한국에서 일한 돈으로 네팔로 돌아가 미용실을 차렸다. 이 소식을 들은 후 모국에서 미용실을 여는 게 그의 꿈이 됐다. 이레샤 씨는 “(한국에서) 일해요. 네팔 미용실 만들어요(네팔에서 미용실을 열 거예요). 네팔 놀러 오세요”라며 웃었다.

▲지난해 12월 6일 경기도 포천의 한 시금치 비닐하우스에서 노동자들이 시금치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문수빈 기자 bean@)
▲지난해 12월 6일 경기도 포천의 한 시금치 비닐하우스에서 노동자들이 시금치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문수빈 기자 bean@)

이례샤 씨가 ‘1분 컷’ 퇴근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부엌 싱크대에 가서 틀어둔 수도꼭지를 잠그는 일이었다. 기온이 떨어지면 수도관이 얼어 출근할 때는 항상 물을 틀어놓는 것이다. 방 3개에 화장실이 1개 있는 이 가건물은 바닥에 보일러 선이 깔려있지 않아 땅의 한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맨발로 발을 디디면 잠이 달아날 정도로 차갑다. 그럼에도 ‘긍정 만렙’ 이레샤 씨는 “여기(집) 좋아요. 따뜻해요”라고 말했다.

이 집에선 전기장판이 있는 침대가 유일하게 따뜻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이주노동자 숙소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레샤 씨가 운이 좋다고들 한다. 비록 물을 틀어놓고 출근해야 하고, 바닥 냉기 때문에 2~3cm 두께의 실내화를 꼭 신고 다녀야 하지만 화장실이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 20일 영하 20도의 날씨에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누온 속헹 씨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되고 이주·인권단체 등이 이주노동자의 숙소 등 노동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현실은 제자리걸음이다.

속헹 씨가 사망한 다음 해인 2021년 고용노동부는 신규, 사업장 변경, 재입국 특례 등 고용 허가 신청 시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나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할 경우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시 고용부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는 우리 산업 현장, 농어촌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인력이자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6일 본지가 찾은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이레샤(29·가명) 씨 집. 작업장인 시금치 비닐하우스 바로 옆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는 이레샤 씨는 환기를 위해 집 문을 열어뒀다. (사진=문수빈 기자 bean@)
▲지난해 12월 6일 본지가 찾은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이레샤(29·가명) 씨 집. 작업장인 시금치 비닐하우스 바로 옆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는 이레샤 씨는 환기를 위해 집 문을 열어뒀다. (사진=문수빈 기자 bean@)

하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도 지난달 찾은 경기도 포천에서는 이레샤 씨처럼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여전히 비닐하우스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포천만 유별난 게 아니다. 고양시 노동권익센터가 지난달 6일 발표한 ‘이주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223명 대상)’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85.2%인 190명이 사업주가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주거용 건물에서 거주하는 사람은 44명(23.1%)이었으며 나머지 146명(76.9%)은 회사 건물 일부,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는 비닐하우스에 살더라도 사업주가 근로계약서에 이주노동자의 주거지를 ‘주택’이라고 적어서 내면 고용 허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고용부는 숙박시설을 점검하고 있지만, 인력이 부족해 일부밖에 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근로계약서에 적힌 이주노동자의 숙소를 하나하나 들여다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주기적으로 나가서 (환경을) 점검하고 있으나 모든 사업장을 다 나갈 수 없어 목표를 정해서 나가고 있다”고 해명했다. 고용부는 1년에 3000개의 사업장을 조사하겠다고 했지만, 전체 사업장 수 5만~6만 개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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