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아가들의 눈

입력 2022-05-24 05: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애기들도 눈이 보이나요?” 신생아 진료를 받으러 온 부모들이 종종 하는 질문이다. “그럼요. 볼 수 있어요. 다만 보이는 것이 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내 대답이다.

외국에 나가 영어가 아닌 그 나라 현지어 간판을 보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처럼, 신생아들도 사물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 사물이 뭔지는 모른다. ‘엄마’ ‘아빠’ ‘맘마’라는 개념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다.

올해 5월로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시작한 지 꼭 30년이 된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성가시고 짜증스러웠지만, 이제는 울음소리가 들려야 소아과 병원 맛이 날 정도다. 주사를 맞을 때처럼 당연히 울어야 할 때 안 울면 오히려 허전하다. 울다가도 엄마가 얼러주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금세 웃어버리는 모습에 난 매번 껌뻑 넘어간다. 아기들의 눈! 볼수록 아름답다. 티 하나 없이 해맑은 순수 그 자체, 아무런 생각도 안 하는 것 같은 편안함, 모든 것이 신기하다는 눈빛. 웃을 때는 말한 것도 없고 울 때마저도 아름답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거 같다는 말이 그래서 생기지 않았을까. 아가들의 눈을 보고 있으면 사람은 원래 착하게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계속 봐도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은 착한 것으로 연결되니까. 그런데 살면서 때가 끼고 욕심이 생기며 맑음과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것이지 싶다.

최근에는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진료실에서 아이 병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이 아이가 장차 커서 살아갈 세상이 과연 행복한 세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환경오염, 지구 온난화, 전염병, 에너지 문제, 주기적인 경제 불황, 정치사회적 갈등, 전쟁과 테러 등등이 날 그렇게 만든다.

아침에 거울 앞에서 면도를 한다. 세월에 쓸려 희미해진 눈동자, 머릿속에서는 온갖 상념들이 주식전광판처럼 끝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가슴에는 사랑 대신 욕망으로 가득한 남자가 서 있다. 아가들의 눈을 보면서 워즈워드의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시구가 떠오르는 5월의 진료실이다.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쯔양·닥터프렌즈·닥터딩요와 함께하는 국내 최초 계란 축제 '에그테크코리아 2025' 개최
  • 흰자는 근육·노른자는 회복…계란이 운동 식단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 [에그리씽]
  • 홍명보호, 멕시코·남아공과 A조…'죽음의 조' 피했다
  • 관봉권·쿠팡 특검 수사 개시…“어깨 무겁다, 객관적 입장서 실체 밝힐 것”
  • 별빛 흐르는 온천, 동화 속 풍차마을… 추위도 잊게 할 '겨울밤 낭만' [주말N축제]
  • FOMC·브로드컴 실적 앞둔 관망장…다음주 증시, 외국인 순매수·점도표에 주목
  • 트럼프, FIFA 평화상 첫 수상…“내 인생 가장 큰 영예 중 하나”
  • “연말엔 파티지” vs “나홀로 조용히”⋯맞춤형 프로그램 내놓는 호텔들 [배근미의 호스테리아]
  • 오늘의 상승종목

  • 12.05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4,280,000
    • -2.25%
    • 이더리움
    • 4,546,000
    • -3.71%
    • 비트코인 캐시
    • 857,000
    • -0.23%
    • 리플
    • 3,050
    • -2.15%
    • 솔라나
    • 199,600
    • -3.43%
    • 에이다
    • 621
    • -5.34%
    • 트론
    • 430
    • +0.47%
    • 스텔라루멘
    • 361
    • -3.73%
    • 비트코인에스브이
    • 30,600
    • -0.87%
    • 체인링크
    • 20,400
    • -3.82%
    • 샌드박스
    • 211
    • -4.52%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