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도 못 찾은 푸틴...러시아에 '재앙'된 핀란드의 나토 가입

입력 2022-05-16 11:25 수정 2022-05-16 12:45

▲핀란드의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오른쪽)과 산나 마린 총리(왼쪽)가 15일(현지시간) 헬싱키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헬싱키/EPA연합뉴스
▲핀란드의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오른쪽)과 산나 마린 총리(왼쪽)가 15일(현지시간) 헬싱키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헬싱키/EPA연합뉴스

이제 나토 가입이 실용적

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절차에 본격 착수했다. 1948년 군사 중립국 지위를 선택한 지 74년 만이다. 핀란드가 역사적 결정을 내리게 만든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국제사회의 비난과 우려에도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하면서 유럽의 안보 위기의식을 일깨운 영향이다. 푸틴은 핀란드를 나토에 뺏기면서 결국 제 발등을 찍는 결과를 맞게 됐다.

CNN에 따르면 핀란드의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과 산나 마린 총리는 15일(현지시간) 헬싱키 대통령궁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나토에 가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의원 대다수가 나토 가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형식적인 절차가 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1948년 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에 패한 핀란드는 4월 소련과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을 체결했다. 서방 주도의 나토 혹은 소련이 이끄는 바르사뱌 조약 어디에도 가입하지 않고 군사적 중립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 1970년대 서방과 동맹을 강화하고 1995년 유럽연합(EU)에도 가입했지만 나토는 예외로 뒀다. 핀란드에서 나토 가입 지지 여론은 30%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2월 24일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이 모든 걸 뒤집었다. 최근 핀란드의 나토 가입 찬성 여론은 60%를 넘어섰다.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배경으로 정부도 나토 가입에 속도를 냈다. 12일 성명을 통해 나토 가입을 공식화한 지 이틀 만에 푸틴에 전화를 걸어 의지를 천명했다. 그리고 하루 만인 15일 가입 절차에 본격 착수했다. 74년 된 ‘군사적 중립’ 역사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석 달 만에, 가입 의지를 밝힌 지 나흘 만에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니니스퇴 대통령이 “역사적인 날이고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핀란드가 군사적 중립을 택한 배경은 '실용주의'였다. 알렉산더 스텁 전 핀란드 총리는 CNN과 인터뷰에서 “핀란드 안보는 첫째 지리와 역사, 둘째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라는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상적으로 1300km에 달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와 협력하기를 원한다”면서도 “그러나 역사를 통해 핀란드 안보에 가장 현실적인 위협이 러시아라는 것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리적으로 이웃한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EU에 가입하면서도 나토는 피해왔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 위협이 현실화한 상황에서 이제는 나토 가입이 실용적인 선택이 됐다는 의미다.

핀란드의 ‘실용적’ 선택은 푸틴에게는 재앙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은 여러 국면에서 러시아에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면서 러시아 경제는 1994년 이후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러시아 재무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가 1년 전보다 12%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서방의 잇단 제재로 28년 만에 최악의 경기위축 국면에 접어드는 것으로, 지난 10년간 쌓아올린 경제 성과가 사라지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또 하나의 재앙 수준의 결과가 바로 핀란드의 나토 가입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나토가 러시아 턱밑까지 동진을 했다며 1990년대 경계선까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이웃 혹은 과거 구소련 일부 국가가 나토에 합류하기 전으로 되돌리고 싶어한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화상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모스크바/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화상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모스크바/AP연합뉴스

부메랑으로 돌아온 우크라 침공

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푸틴의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 됐다. 현재 나토 5개 회원국이 러시아와 약 1200km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핀란드와 러시아가 공유하고 있는 국경의 길이는 1300km로,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러시아가 나토와 직접 맞댄 국경 길이가 배로 늘어나게 된다. 푸틴에 치명적인 반면 나토로서는 천군만마를 얻는 일이다. 핀란드는 600만 명이 채 안 되는 적은 인구의 국가지만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수십 년간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해온 만큼 나토 회원국들과 호환도 가능하다. 나토 임무에 바로 투입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물리적 타격뿐만 아니라 반푸틴 연맹의 단합에 불을 지피는 상징적 의미가 될 가능성도 크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중립 입장을 유지해오던 국가들은 현재 우크라이나에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북극에 대한 나토의 영향력을 더 확장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도 러시아로서는 뼈아프다. 북극은 천연자원, 지정학, 영토 분쟁 등을 이유로 갈수록 전략적 요충지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재앙을 잘 알고 있는 러시아가 가만히 있을지는 미지수다. 푸틴은 핀란드에 중립국 지위 포기와 나토 가입은 실수라며 보복을 경고했다. 실제 전력 공급을 끊어버렸다. 핀란드 국방정보국장을 지낸 마르티 카리는 러시아가 핀란드 영공을 침범하고 해상 활동을 방해하거나 정보작전을 강화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러시아의 보복 행동으로 불안이 커진다고 해도 나토 가입의 이점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하콘 룬데 삭시 노르웨이 국방대학 부교수는 “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와의 새 국경을 따라 러시아군이 증강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혜택이 부정적인 결과보다 클 것”이라고 평가했다.

푸틴은 결국 유럽에서 나토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과거 제국의 영광을 부활시키려던 야망을 스스로 무너뜨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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