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딜레마] '안전관리자 고용=하늘의 별따기'…열악한 환경 사고 촉발

입력 2022-02-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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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착용하면 근무에 지장 생겨…"코로나 때문에 안전 교육 못 받아"

▲24일 서울시 구로구 온수산업단지 내 한 설비 제조 중소업체에서 근로자가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고 그라인더 작업을 하고 있다.(정회인 기자 hihello@)
▲24일 서울시 구로구 온수산업단지 내 한 설비 제조 중소업체에서 근로자가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고 그라인더 작업을 하고 있다.(정회인 기자 hihello@)

“32년 동안 근무하면서 안전관리자는 한 번도 못 봤어. 개인만 조심하면 다칠 일이 없어요. 누가 쫓아다니면서 일일이 감독한다고 하면 어떻게 일하겠습니까”

서울 구로구 온수산업단지에 한 동력전달장치 제조 중소기업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 모 씨(60)는 28살부터 이 산업단지에서 동력전달장치를 제조하는 일을 해왔다. 20분 넘게 작업에 열중하다 고개를 들어 올린 그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과 함께 머리카락이 엉켜 붙어 있었다. 안전모는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중대재해법 시행 한 달을 앞둔 24일 오전 10시, 영하 12도의 한파가 몰려온 날이었지만 온수산업단지의 작업장 내부는 열기로 후덥지근했다. 4.2m 높이의 500평 면적 작업장에는 환기 시설이 없었다. 가로 1.5m, 세로 50cm 크기의 창문 5개가 전부였다. 4m 간격으로 나란히 설치된 창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다. 관련 설비들도 꽤 오래 사용돼 녹이 슬거나 코팅이 벗겨진 것도 있었다. 언제라도 화재가 발생하면 큰 인재로 번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

▲24일 서울시 구로구 온수산업단지 한 동력전달장치 제조업체에서 근로자가 작업 과정에서 긁히고 벗겨진 자신의 안전화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정회인 기자 hihello@)
▲24일 서울시 구로구 온수산업단지 한 동력전달장치 제조업체에서 근로자가 작업 과정에서 긁히고 벗겨진 자신의 안전화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정회인 기자 hihello@)

이 씨 옆에 있던 작업자 윤 모 씨(49)도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윤 씨는 경력 5년의 기술자다. 윤 씨는 “보다시피 여기 내부가 더워서 안전장비까지 하면 일 못 한다”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10년 넘은 경력자들이라 (보호구 없이도) 괜찮다”고 말했다.

산재 예방에 중점을 둔 중대재해법이 시행됐지만, 중소기업들의 작업 현장은 안전과 여전히 멀어 보였다. 보호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작업자부터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무선 이어폰을 꽂고 작업 중인 근로자도 있었다. 이날 찾은 온수산업단지 내 중소기업 10곳 모두 안전관리자는 한 명도 없었다.

16년째 분체 설비 중소기업에서 근무 중인 오 모 주임(63)은 안전 교육을 어떻게 진행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코로나 때문에 전 직원이 안전 교육을 못 받았다”며 “한 달에 2번, 주임과 반장 2명만 시청각 안전 교육을 받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의 안전 교육은 15분 정도의 영상 2개 시청뿐이었다.

▲24일 서울시 구로구 온수산업단지 한 분체 제조업체에서 근로자가 기계 내부에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들어가고 있다. (정회인 기자 hihello@)
▲24일 서울시 구로구 온수산업단지 한 분체 제조업체에서 근로자가 기계 내부에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들어가고 있다. (정회인 기자 hihello@)

근로자들의 안전 부주의와 노후화된 시설은 중대재해로 직결될 수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 2월까지 최근 6년간 64개 산업단지에서 산업재해와 화재·화학·폭발사고 등의 중대 사고가 126건 발생했다. 특히 126건의 사고 중 조성 20년 이상 노후 산업단지의 사고는 123건이나 됐다. 사상자는 230명이 발생했으며 이 역시 조성 20년 이상 노후 산업단지의 사상자는 226명에 달했다.

산업단지 내 산재가 발생해도 중소기업들은 중대재해법 관련 안전 조항을 수립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 설문에선 50인 이상 중소 제조업체 53.7% ‘중대재해법 의무사항을 준수하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특히 그 이유에 10명 중 4명이 ‘의무·이해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시행 전 대기업과 대형건설사 99.6% 안전보건계획 수립을 마쳤지만, 대다수 중소기업은 처벌법 관련 대응에 미흡한 상황이다.

▲24일 서울시 구로구 온수산업단지 한 동력장비 제조업체서 근로자가 안전장비 없이 단순 노동 작업을 하고 있다. (정회인 기자 hihello@)
▲24일 서울시 구로구 온수산업단지 한 동력장비 제조업체서 근로자가 안전장비 없이 단순 노동 작업을 하고 있다. (정회인 기자 hihello@)

이날 산업단지에서 만난 중소기업들은 “현실을 모르는 법 때문에 기업을 운영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옥죄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중대재해 80% 이상이 중기업계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현장은 정부의 이상과는 달랐다. 샤시 제조 중소기업 사장은 공장을 떠나는 기자에게 “안전장비를 착용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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