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입력 2021-12-01 05:00

지난해 초, 감기에 걸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엘 갔다. 코로나19의 시작점에서 모두가 예민하던 때였다. 익숙지 않은 마스크 때문에 숨쉬기가 불편하다는 아이를 겨우 달래며 순서를 기다리는데,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아이가 로비로 들어왔다. 몇 발자국 앞에 걷던 엄마는 아이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고 진료 접수를 한 뒤 소파에 앉았다. 아이도 그 옆에 자리했다.

‘옷깃이라도 여미지’란 생각을 했지만, 나서진 않았다. 감염 우려에 신경이 곤두서 있기도 했고, 그녀가 아이 외투를 차에 놓고 왔을 수도 있는 터였다. 살갑지 않다고 해서 엄마가 아닌 것도 아니었다.

그때 한 할머니가 “이러면 감기가 더 심해져요”라며 아이의 매무새를 고쳐줬다. 그러자 그 엄마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애 만지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러고는 아이의 손을 낚아채 자리를 떠났다.

그때부터였다. 내 자식이 아닌 아이에게 시선을 거둔 일 말이다. 사실 거리두기로 이웃을 볼 기회도 많지 않았다. 놀이터는 늘 한산했고, 산책길 씽씽카는 자취를 감췄다.

그러던 중 ‘정인이 사건’을 접했다. 출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때였다. 관련 사건을 다룬 시사프로그램을 본 뒤 며칠간 잠을 설쳤다. 두 아이를 돌봐야 했기에 이후 소식들은 애써 외면했다. 관련 대책이 빠르게 마련되고 있다는 소식으로 미안함을 덮었다.

하지만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천안 계모 사건, 화성 입양아 학대 등 아연실색할만한 일들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수법은 잔인했고, 결과는 참혹했다. 입에 담지도 못할 일들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의심 사례는 3만8900건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43명의 아이가 하늘로 갔다. 5년 전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늘었다. 학대는 대부분 가정 내(87.3%)에서 벌어졌다. 신체(12.3%), 정서(28.3%)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몹쓸 짓(성 학대 2.2%)까지 했다.

아동학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빨리 그 지옥 같은 환경에서 아이를 구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아동학대 발견율(아동인구 1000명당 학대 사례 발견율)은 4%에 불과하다. 10%가 넘는 미국, 호주와 비교하면 참담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도 가장 낮다.

사람들은 체벌을 훈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관심이 문제다. 실제 학교 선생님, 가정폭력 보호시설 상담사 등 신고의무자의 신고 비율은 2016년 32%에서 지난해 28.2%로 줄었다. 감시 공백을 메워주던 이웃 등 비신고자들의 도움도 점점 줄고 있다. 어른들이 시선을 거둔 사이 아이들을 구한 건 ‘그들 자신(2016년 9%→2020년 14.2%)’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란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하지만 지금 마을 대문은 굳게 닫혀있다. 아이들의 “살려달라”는 울음소리는 허공에 묻히고 있다. 너무 많은 아이가 희생됐다. 전염병만 탓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 어두운 낯빛, 반복되는 울음소리는 아이들이 보내는 간절한 ‘SOS’다. 이제 우리는 응답해야 한다. 과거, 전염을 핑계 삼아 고개 돌렸던 나를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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