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종전선언이 평화 가져온다는 환상

입력 2021-11-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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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대 세습의 최고 통치자로 오른 지 10년이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김정은은 12월 30일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다. 다음해 국방위 제1위원장에 앉았고, ‘공화국 원수’의 칭호를 부여받았다. 이후 노동당 위원장, 국무위원장의 자리가 얹혀지면서 ‘위대한 영도자’로 불렸다. 신격화(神格化)는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예전 김일성·김정일에게나 썼던 ‘수령’의 호칭을 김정은에게도 붙이고 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네 차례 만났다. 2018년 4월과 5월 판문점에서, 9월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가졌고, 2019년 6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판문점 3자 회동이 있었다. 서로 적대 행위와 도발을 멈추자는 판문점선언, 평양공동선언 등의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은 이제 흔적도 찾기 어렵고 남북은 대립과 위기의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말에 다시 종전(終戰)선언에 매달린다. 9월 유엔연설을 통해 종전선언을 제안한 이후 한국과 미국 정부의 협의가 진행 중이다. 미국은 당초 시기와 순서, 조건에서 우리 정부와 이견을 드러내고 부정적이었으나, 현재 문안을 막바지 조율 중이라고 한다. 평화체제가 굳혀질 때까지 현행 정전(停戰)체제를 유지하는 내용으로 알려진다. 이런 절충안이라면 아마도 북한의 반응은 냉담할 것이다. 북은 줄곧 한미연합훈련과 미군 전략물자 반입의 영구 중단부터 주장해 왔다.

종전선언은 말 그대로 지금의 ‘전쟁중단 국면’을 ‘전쟁이 끝난 상태’로 바꾸는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의 모멘텀이자 한반도 평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 한반도의 최대 위협인 북한 핵이 엄존하는 상황에 종전선언만 서두르는 건 한미동맹과 국가안보를 흔드는 위험한 도박이라는 우려도 많다.

종전선언, 또 평화협정이니 하는 약속이 전쟁의 종식과 평화를 담보하는 안전장치가 될것이라는 믿음은 착각이다. 전쟁사에서는 속임수만 횡행했다. 1960년 시작된 베트남전쟁은 1973년 ‘파리평화협정’으로 종결되고 미군은 남베트남에서 철수했다. 그리고 미군이 떠난 2년 뒤인 1975년 3월 북베트남은 기습 남침을 감행했고, 4월 남베트남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평화협정을 어기면 전면 북폭(北爆)으로 북베트남을 쓸어버리겠다던 미국의 방위조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대표적 사기극은 독일과 영국·프랑스·이탈리아 4국이 맺은 1938년 9월의 ‘뮌헨협정’이다.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영토 수데텐란트 점령을 다른 3국이 용인하는 대신,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약속이었다. 당시 영국 체임벌린 총리가 귀국길 공항에서 협정문을 흔들며 “명예로운 평화를 들고 왔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인 1939년 9월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해 2차대전을 일으킨다. 직전인 그해 8월 독일과 소련의 불가침조약은 더 어이없다. 히틀러의 제안에 스탈린이 응했다. 소련을 묶어 놓고 히틀러는 유럽 전역을 유린한 뒤, 협정 2년도 안된 1941년 6월 300만 대군으로 소련에 진격한다.

스스로 나라를 지키는 힘의 균형을 확보하지 못하면 평화의 맹약(盟約) 같은 건 휴지조각일 뿐이다. 국제정치에서 반복된 배반의 역사가 그렇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은 비핵화(非核化)와 적대행위 중지 및 불가침,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등에 합의했다. 기실 노태우 대통령 때인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에 담겼던 내용으로 이후 여러차례 재확인되어 왔다. 그럼에도 북은 지난 30년 내내 거꾸로 갔다. 김정은 체제 들어서도 거듭된 핵실험을 통한 핵무기 고도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발사,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으로 어떻게 한반도의 위기를 증폭시켜 왔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런 상황에 종전선언은 김정은에게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령부 해체, 미국의 핵우산 제거, 그리고 우리 군이 목숨으로 지켜온 서해북방한계선(NLL) 폐지 등을 요구하는 빌미만 될게 뻔하다. 우리 안보의 치명적인 타격이자 국가방어 체계의 무력화다.

남북 평화를 위한 모든 접근은 결국 북한 핵 문제에 맞닿아 있다. 비대칭 전력의 핵심인 북의 핵무기야말로 한반도 위기의 본질이다. 북핵의 폐기가 전제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떤 형태의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도 모래성일 뿐이고, 항구적 평화를 담보할 수 없다. 종전선언은 비핵화의 돌파구가 아니라 그 결과여야 한다. 그러나 김정은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에 대한 집착이 환상인 이유다. 임기가 끝나가는 문 대통령이 그가 내세운 평화프로세스의 업적을 위해 밀어붙이는 대못박기라면 더욱 무망(無望)하다. 종전선언은 평화의 디딤돌이 되기는커녕, 국가안보의 근간을 망가뜨릴 우려가 더 크다. kunny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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