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프리즘] 기업의 기부금과 ESG경영

입력 2021-09-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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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전 SK 사장

국세청 홈택스를 통해 5대 그룹 주력 5개 기업(삼성전자,현대자동차, LG생활건강, SK텔레콤,롯데쇼핑)의 기부금을 추정해 봤다.이들 5개 기업의 추정 기부금은 3425억 원, 이 중 기부금 투명성 검증의 3단계로 불리는 공시-감사-평가를 모두 거친 규모는 149억 원으로 전체의 4%에 불과했다. 나머지 96%가 투명하지 않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대기업들이 기부금 지출의 투명성에 관해서 스스로의 기준을 갖추고 있지 않거나 무관심하다는 결론은 내릴 수 있다.

기업 사회공헌의 한 축인 기업재단도 투명성의 사각지대이다. 앞서 언급된 5개 기업은 소속 그룹과 특수한 관계의 기업재단에 총 기부금의 40% 정도를 기부했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가 2018년에 발표한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 165개 중 단 3곳만이 공시-감사-평가의 3단계를 완료해 투명성 검증을 받았다. 내 돈으로 기부했기에 내 맘대로 쓸 수 있다는 생각이 그 배경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기업은 공익법인에 기부하면서 비과세의 혜택을 받는다. 2019년 추정 기부금 8조 원에 평균세율 15%를 적용하면 1조2000억 원에 이르는 돈이 세금으로 걷히지 않고 좋은 곳에 쓰라고 민간에 유보된 셈이다. 결국 출연금이나 기부금은 국가의 혜택을 받은 공공의 자산이지 개인이나 기업이 제멋대로 쓸 수 있는 돈은 아니다. 정부는 이 돈의 쓰임새를 검증해야 하고 이것이 국가 경영 원칙의 하나인 조세정의에 부합한다. 더욱이 확산되고 있는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서 사회적 가치의 창출은 투명성을 전제로 하기에 그 필요성이 더하다고 할 수 있다.

대기업의 오너나 최고경영자가 횡령이나 분식에 연루되어 사법처벌을 받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내·외로 이중, 삼중의 장치를 한다. 독립된 감사위원회를 두고 사외이사의 비율을 상향조정하고 감사지정인제를 도입하고 특수관계자들 간의 거래를 제한한다.

그런데 기부를 잘못해 곤욕을 치른 경우도 많다. 미르, K스포츠 재단이 비근한 사례다. 이게 화근이 되어 삼성전자는 ESG 평가의 한 지표인 2018 MSCI 코리아리더스 지수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대기업은 기부에 대해서는 제도적 제한과 기준이 거의 없다. 이 틈새를 사이비 공익법인이 파고든다. 묻지마 성금, 깜깜이 기부가 권력을 끼고 정실에 따라 성행하는 이유다. 기업 사회공헌의 본령인 사회와의 접점은 엷어지고 사업과의 연결만 두터워진다. 기업의 선한 뜻으로 집행된 기부금이 회사를 위기로 몰고 공동체를 좀 먹는다. 기업은 지탄을 받고 사회는 병들어 간다.

기업의 기부 의사결정이 이래서는 안 된다. 정의기억연대 같은 단체도 한국가이드스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클릭 몇 번만 했으면 외부감사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나눔의 집은 아예 공시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도 기업은 거액의 기부를 했다. 개인이야 몰랐다 치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주주나 투자자, 지역사회와 임직원 등 이해관계자가 있는 기업은 누구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도 없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ESG경영에 기업 기부금 집행의 기준이 도입되어야 한다. 그래서 ESG의 평가과정에서 기부금 지출의 투명성이 반드시 검증되도록 의무화할 것을 제안한다. 외부감사의 이행은 물론이고 모금비용과 사업비용의 비율, 사회적 물의와 사회적 가치를 계량해 기부금 지출의 평가에 필수적 사항으로 산입되도록 하자. 회계감사 과정에서 기업이 기부금 집행에 어떤 기준으로 임했는지를 검토해 지속가능 보고서나 ESG평가에 포함시켜야 한다.이는 기업뿐 아니라 이해관계자, 나아가 공동체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대기업 이사회에 설치된 ESG위원회는 기부금을 받는 기업재단이 같은 계열이라도 공시-감사-평가의 세 단계를 거쳤는지 심의할 필요가 있다. 기업재단이 부당내부거래나 경영권 승계의 편법적 도구라는 일부의 의혹을 불식시키는 것도 ESG경영의 성과로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업의 신용평가 보고서와 같은 투명성 리포트 같은 것을 공익법인에 도입해 줄 것을 제안한다. 이는 기부자로서의 권리를 기업이 되찾는 길이기도 하고, 비리로 점철된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를 바르게 정립하는 또 하나의 의미 깊은 사회공헌 사업이기도 한다. 제도는 문화로 완성된다. 기업이 기부금에 대한 제도를 ESG의 관점에서 재정립하고 문화로 실천하면 사회는 공동체로서 그 지속가능성을 확고히 높여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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