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시각] 내가 기분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

입력 2021-04-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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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학 저술가

가끔 8월 하늘에 솜사탕처럼 떠 있는 뭉게구름 아래서 샐러드를 먹는 사자의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기분에 자주 빠지는 건 아니다. 정말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때 기분은 평온하고 몸은 느긋해진다. 도파민이나 세로토닌의 분비가 활발해질 때 신체 활력의 각성 수치가 빠르게 높아지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아, 살맛 난다! 기분이 좋아지면 공연히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럴 때 인생에서 작은 걱정거리 따위는 아무 문제도 되지 못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미래를 낙관하거나 타인을 관용하는 품이 넓어지고 매사를 긍정하는 태도를 취한다. 반면 기분이 미치광이처럼 종잡을 수 없게 날뛸 때 나는 어쩔 줄 모른다.

오래 전 소극장에서 본 연극 중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라는 작품이 있다. 이강백 작가의 희곡인데, 가난한 사람들이 작당해서 비 오는 날 부자인 척하면서 벌이는 소동을 그린 작품이다. 하도 오래 되어서 이야기의 디테일은 잊었지만 무릎을 치고 싶을 만큼 기막힌 제목은 기억에 남아 있다. 사람은 날씨에 따라 기분이 널뛰기를 하듯 바뀌는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햇빛이 넘치는 날은 빛의 양명함 속에서 우리 기분도 한결 명랑해진다. 반면 비가 오는 날은 땅을 두드리는 단조로운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기분이 가라앉기 일쑤다. 그런 날은 느른한 권태와 이유가 분명치 않은 울적함이 마음의 한쪽으로 날개를 접고 내려앉는다. 분명 우리 기분은 날씨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증거다.

날씨는 우리의 생체리듬을 장악하고, 기분을 쥐락펴락하며 영향을 미친다. 날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기상 현상은 우리 마음과 감정의 상태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비 온 뒤 빗방울이 맺힌 채 살랑거리는 나무의 초록 잎들과 작은 새들의 명랑한 지저귐은 우리 기분을 상쾌함으로 이끈다. 공중의 태양, 쾌청한 하늘, 그 아래 우거진 신록 속에서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특히 겨울철은 해가 떠 있는 시간도 적을 뿐만 아니라 해가 뜨는 날도 줄고, 구름이 드리운 날이 많다. 겨울철은 여름보다 일조량이 적고, 그것이 수면 리듬이나 멜라토닌 같은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쳐 더 자주 우울감에 젖게 만든다. 춘분을 기점으로 밤보다 낮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일조량도 늘어난다. 겨울이 끝나고 야외활동이 부쩍 많아질 때 사람들이 더 활기찬 모습을 보이는데 그것은 봄날의 누리에 내리는 햇빛의 풍부함에 영향을 받기 때문일 테다. 봄날 화창한 날씨의 영향을 받아 기분은도 화사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기분이 좋다”거나 “기분이 나쁘다”라고 말한다. 기분은 우리 감정을 압도하거나 강렬한 방식으로 사로잡는다. 대개 기분은 일상에서 겪는 일들, 누군가와의 만남, 대화, 언쟁 따위에 두루 영향을 받는다. 기분에 따라서 위축감을 느끼거나 자신감이 더 생기는 것이다. 기분이 가라앉으면 몸은 더 쉽게 피로해지고 활력은 떨어진다. 부정적인 생각은 기분을 나쁘게 휘젓는다. 반면 긍정적인 생각은 기분을 고양시킨다. 이렇듯 기분은 감정을 느긋하게 만들거나, 극단적인 우울감에 젖게 만든다. 기분과 생각은 상호연관성이 있다. 기분에 따라 일상 활동을 수행하는 활력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다른 활동이나 환경을 바꿔 기분 전환을 시도한다. 집밖을 나서서 산책을 하거나 고요한 상태에서 음악에 몰입해 듣는 게 그런 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기분은 몸과 마음을 지배한다. 사람은 기분의 영향 아래서 나날의 삶을 꾸린다. 기쁨, 활기, 느긋함, 평온함은 긍정적인 기분의 지표라면 우울, 짜증, 초조, 불안, 두려움, 침체, 긴장 따위는 부정적인 기분과 연관이 있다. 기분은 생리적 차이를 만들고, 삶의 피로와 긴장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며, 긴 시간에 걸쳐 삶의 질을 결정한다. 한 20대 남자가 공원에서 마주친 60대 여성을 아무 이유도 없이 폭행했다. 60대 여성은 영문도 모른 채 낯선 남자가 휘두른 주먹에 맞아 코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된 남성은 왜 폭행했느냐는 물음에 ‘그저 기분이 나빠서’라고 대답했다. 한 남자가 길고양이를 학대하고 죽인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그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 역시 ‘기분이 나빠서’라고 말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제 기분에 취해 어리석은 행동을 취한다. 제 기분이 나쁘다고 약한 존재에게 화풀이하는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하지만 동물이건 타인이건 제 기분이 나쁘다고 위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비열한 행동이다.

뜻밖에 기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가 음식이다. 기분과 섭식은 불가결한 생리적 관계를 이룬다는 뜻이다.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먹느냐에 따라 우리 기분은 달라진다. 기분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음식이 활용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누군가는 스트레스가 쌓이고 짜증이 날 때 매운 음식을 먹는다. 누군가는 무기력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카페인 음료를 마신다. 나는 우울해질 때마다 팥죽을 찾아 먹는다. 그러면 기분이 나아지면서 우울감이 사라지는 효과를 누린다. 섭식으로 제 기분을 관리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음식만이 아니라 수면, 식습관, 건강과 영양 상태 같이 신체에 작동하는 여러 생화학적 요소들이 기분을 만든다. 거기에 덧붙여 자기가 처한 상황과 사건들, 자산 상태, 인간관계, 날씨 같은 존재의 바깥에서 신경자극을 만드는 요소들이 기분에 관여한다.

그렇다면 과연 기분이란 무엇인가? 기분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기분은 감정과 어떻게 다른지 그 구분이 모호하다. 때때로 기분과 감정은 하나의 의미로 통용된다. 감정과 기분은 우리로 하여금 행동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으로 에너지의 뿌리라는 점에서 같지만 감정이 보다 포괄적인 영역이라면 기분은 그보다 하위 단계에서 모호하고 일시적인 상태로 겪는 감정의 파동이다. 기분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로버트 E. 세이어는 기분을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되는 이면의 감정”이라고 말한다. 기분이란 정서적 속성을 가진 것으로 기저(基底)에서 올라오는 가벼운 마음, 혹은 생리적 리듬이다. 기분은 물때와 같이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며 우리 감정과 신체에 지속해서 영향을 미친다. 기분은 타자와 세계에 대한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이고, 타자와 세계에 반응하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대의명분보다도 날씨에 따라 더 쉽게 변하는 게 기분이다. 기분은 생각과 연동되는 한편 일에의 의지나 의향과도 관계가 있다. 산책을 하고 싶다거나 술을 마시고 싶다거나 친구를 만나고 싶다거나 쇼핑을 하고 싶은 것, 이런 내면의 욕구는 다 기분의 일종이다. 기분은 욕구나 생각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동기를 이룬다.

기분은 마음의 영역이지만 필경 몸에도 영향을 끼친다. 종종 기분과 몸은 하나로 움직인다. 그것은 사람이 심신상관체의 존재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 테다. 기분, 생각, 행동은 하나로 연동되어 작동하는 그 무엇이다. 일상 활동 중 많은 것이 기분에 의해 촉발된다. 누군가를 만나고, 무엇을 먹고 마시며,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것, 당신의 충동과 행동은 기분에 연계되어 일어난다. 기분은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몸에 관해 기본적인 정보를 말해 주는 지표다. 기분은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뿐만 아니라 내 인생이 안녕한가 그렇지 못한가를 가늠하는 계기판이다. 내가 기분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 경험에 근거한다면, 이 말은 맞다. 사람은 제 기분에 따라 변한다. 우리는 변화무쌍한 제 기분의 변화에 따라 산다. 기분은 돈, 지위, 명예보다 더 중요하다. 우울을 막고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가? 열정과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살고 싶은가? 기분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러낸다. 그러니 잘 살려면 당신 기분의 생리적 리듬을 잘 살피고 그것을 잘 관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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