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자산어보' 이준익 "내 본질은 비주류니까"

입력 2021-04-03 06:00 수정 2021-04-03 09:17

손암 이야기 담은 '자산어보' 연출…"정약전 근대성 주목했다"

▲영화 '자산어보'를 연출한 감독 이준익.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를 연출한 감독 이준익.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1952년)의 한 구절이다. 영화 '자산어보'를 보면 이 시구가 떠오른다. 무명(無名)의 존재에 이름과 가치를 새긴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이름 없는 물고기에게 이름을 만들어주는 손암 정약전의 시도가 '자산어보'에 담겼다. 이는 이준익 감독이 말하는 영화의 핵심과도 일맥상통한다. "그게 바로 '격물치지(格物致知)'야!"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자산어보'는 흑산도로 유배를 간 정약전과 그곳에서 만난 어부 창대가 서로 지식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담는다. 배우 설경구, 변요한, 이정은이 출연한다.

이 감독이 한국사를 주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황산벌', '박열', '왕의 남자', '사도',' 동주'까지 역사적 사실을 적극적으로 다뤄왔다. '자산어보'에선 손암 정약전을 담았다. 장소는 흑산도요, 시대는 부정부패가 만연하던 조선 말기다. 우리에게 익숙한 다산 정약용이 아닌 그의 형 약전을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비주류'였기 때문이다.

"'난 꼭 비주류를 통해 세상을 이야기 할 거야'라는 계획과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태생이 비주류인 거지. 근데 '왕의 남자' 이후 주류가 돼버린 거예요. 주류 옷은 맞지 않는 옷이어서 주류 행세를 하고 싶진 않아요. 저는 굉장히 분열적인 인간이라 비주류적 본질과 주류적 내피가 내 안에서 항상 충돌해요. 영화 이야기 소재를 찾을 땐 주류적 소재엔 관심이 없고 시선도 잘 안가요. 하지만 비주류적 사람들의 가치관이 더 소중하게 다뤄졌으면 좋겠어요."

이 감독이 풀어내는 비주류의 시선이 늘 궁금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류의 탈을 썼지만, 비주류적인 자신을 거침없이 내보이는 이 감독의 영화는 늘 진솔했다. 영화 '동주'에서 이 감독은 송몽규를, '박열'에선 후미코를 세상 위로 끄집어내기도 했다.

"편수가 많아서 그런 것 같은데? (웃음) 사실 난 감독으로서 자의식이 별로 없어요. 직업이 감독이고 내 직업에 성실한 게 당연한 거니까. 제 필모그래피를 봐도 굴곡이 심하잖아요. 확 망했다가 확 잘됐다가 해요. 삶에 일관성이 없어요. 제 정체성의 혼란 때문일 수 있겠죠."

그는 정약전과도 닮았다. 조선 말기 명문가 집안이었던 손암 정약전은 유배 이후 흑산도에서 물고기를 관찰하고, 진정한 비주류였던 창대에게 '지식 교환'을 이유로 손을 내민다.

"약전이 갑오징어에 관심을 두면서 창대에게 '이건 버리는 거냐'고 묻잖아요. 창대가 약으로도 쓴다고 말하자, 약전은 창대에게 '지식을 거래하자'고 말합니다. 그게 '격물'이에요. 주자가 말한 8조목은 '격물치지 성의 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인데,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는 '목민심서'의 세계이고 인문과학이죠. 반면 '격물치지'는 자연과학입니다. 물건에 격을 부여하고 이름을 지어주는 게 1번이에요. 이름을 가질 만한 자격이 있고, 이러한 쓰임새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정하는 거죠."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쓰면서 흑산도에 있는 정약전에게 초고를 보냈고, 이를 정약전이 보고 바로잡아주면서 '자산어보'를 생각했을 거라는 게 이 감독의 해석이다. 정약전이 '자산어보' 서문에 남긴 글에서도 잘 나와있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물질에 대해 끝까지 알아내려고 창대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힌다.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 스틸컷.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창대가 몇 마디 했다고 굳이 책에 '창대가 말하기를'이라고 인용한 건 약전이 갖고 있는 사상이 성리학에 묶이지 않음을 보여주죠. 창대를 벗으로 본 거예요. 안 써도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정약전 개인의 근대성인 겁니다."

이 감독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확실하게 자각하고 있다. 영상미는 촬영감독의 공으로 돌리고, 좋은 시나리오가 나온 것도 작가 덕분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기능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 '어렵게 공부해서 쉽게 전달하는 게 의무인 사람'이라고 했다.

"정약전에 대해 접근하면 제일 먼저 만나는 인물이 문순덕이죠. 정약전은 문순덕의 표류담을 '표해시말'이란 기록으로 남겼어요. 하지만 필리핀까지 떠내려갔던 문순덕의 여정을 중심으로 담지 않은 건 의도적인 거였죠. 너무 이것저것 재구성하면 관객들이 불편해요. 과거 역사를 가져와도 현재적 관점에서, 그리고 일관되게 재구성해야 합니다."

배우 류승룡이 정약용 역할로 특별출연한 것에도 이 감독의 계산이 있었다.

"정약용은 정약전 못지 않은, 아우라 있는 배우로 캐스팅해야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정약용의 존재감에 동의하기 어렵거든요. 캐스팅할 땐 영화 속 역할에 대한 캐릭터와 관계도도 중요하지만, 영화 밖에서 실존 인물의 존재성과 비례해야 해요. 설경구를 먼저 캐스팅했지만, 정약전을 넘어가지 않는 감정을 주면서도 존재감을 남기는 류승룡이 정약용으로 출연하게 된 거죠. 선수예요."

'자산어보'는 흑백영화다. 화려한 볼거리 대신 적나라한 인물의 내면을 선택했다. 자연을 통째로 영화에 담아내지만, 흑백을 통해 군더더기를 뺐다. 그렇게 인물들의 내면이 덩어리째 온다.

"흑백은 구식이 아니고 새롭고 세련되고 특별해요. 흑백을 보면서 체득해 낸 정보의 관점과 컬러를 보면서 얻은 건 똑같은 영화라도 달라질 수 있어요. 컬러는 스펙타클이에요. 시각적 볼거리는 컬러가 훨씬 유리하죠. 하지만 흑백은 뇌가 즐겁습니다. 그래서 배우들의 연기도 빛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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