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권의 글로벌 시각] 김정은의 ‘경제개혁’, 어디로 가고 있나

입력 2021-04-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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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대 객원교수, 전 주핀란드 대사

일반인이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히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2019년 말부터 북한매체 보도들과 국내외 북한 관련 단체들이 내놓는 정보를 종합해 보면 북한에 모종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 방향은 김정은이 권좌에 오른 이후 추구하던 ‘개혁적’인 경제정책들이 후퇴하는 듯한 인상이 짙다.

김정은은 집권 직후부터 경제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 결과는 ‘우리식경제관리방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고, 비교적 최근에 입수된 북한 법령집에 포함된 인민경제계획법, 기업소법과 같은 경제 관련 법령들의 개정 내용을 통하여 확인되었다. 김정은 시대 경제정책들은 국가계획의 범위를 축소하고, 경제 단위의 자율권을 강화하고, 시장과 가격의 기능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들은 지난 세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도했던 ‘시장사회주의’ 개혁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래서 김정은 시대의 경제정책에 ‘개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크게 빗나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내에서 발표된 통계에 의하면 북한경제는 2016년 3.9%의 성장을 보였다. 근래에 보기 드문 성장이었다. 무엇이 그런 성장을 가능하게 했는지 정확한 분석은 쉽지 않지만 김정은의 새로운 경제정책이 효과를 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2017년부터는 다시 마이너스 또는 미미한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2017년부터 본격화된 국제사회의 제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북한은 하노이 북·미 회담에서 제재 완화를 기대했지만 협상이 노딜로 끝남으로써 당분간 제재가 완화될 가능성은 멀어졌다. 이제 북한은 제재가 상수인 상태에서 경제를 꾸려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2019년 말에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올해 1월에 개최된 8차 당대회를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북한경제가 제재, 수해, 국경폐쇄로 인해 삼중고를 겪고 있고 이러다가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와 같은 경제난이 닥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지만, 북한에서는 이미 시장경제가 주민들의 소득과 소비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공식경제가 위기에 빠지더라도 고난의 행군 같은 경제위기가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꽤 일리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북한이 작금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를 더욱 시장화 쪽으로 밀고 나갈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2020년과 2021년 초에 나온 노동당 회의 관련 북한매체의 보도에는 개혁을 강화하는 것으로 볼 만한 언어들은 나오지 않았다. 김정은 시대의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가 유통, 물류 부문의 자율성 확대였다는 점에서 국영 상업망 복구의 강조도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대목이다. 또 하나의 불길한 징후는 작년 하반기에 나온 달러화에 대한 북한 원화의 평가절상 소식이다. 원인에 대해서는 당국이 외화 사용을 금지하고 이를 철저히 단속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류를 이루었다. 북한에서는 오래 전부터 달러를 포함한 외화가 상품 거래 수단이자 가치 저장 수단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래서 가뜩이나 힘든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할 수도 있는데 왜 달러 사용을 금지했는지가 궁금해진다. 정확한 내막을 알기는 어렵지만 사용이 불가능해진 달러가 시장에 대량으로 풀려 가치가 하락하면 주민들의 손에 있는 달러를 싼값으로 거두어들이는 효과를 노렸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조작 대상 화폐는 다르지만 주민들이 갖고 있는 돈을 거의 강제적으로 흡수한다는 측면에서는 2009년 김정일 시대의 화폐개혁과 비슷한 의도로 보인다.

사회주의 경제가 개혁을 추구하면 종국에는 소유권, 사유재산의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가 돈을 더 벌면 개인의 재산도 늘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에서는 부쩍 반사회주의 투쟁을 다짐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실제로 3월 14일자 노동신문은 사회주의 생활양식의 확립과 부르주아 사상문화의 침습 저지를 위한 전사회적, 전대중적 투쟁을 외치고 있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교훈을 거론하며 개혁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정일 시대에도 2000년대 초반 개혁의 방향으로 나가다가 2006년을 지나면서부터 ‘황색바람’ 운운하면서 역주행을 한 적이 있다. 김정은 시대의 시장화 개혁은 선대와 달리 불가역적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시장화의 정도가 깊고 법령까지 개정하여 공식화한 점도 이런 평가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개혁 시도 이후 약 10년이 되어가는 현 시점의 북한에서는 2007년 김정일 시대의 강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결국 김정은도 선대와 똑같은 문제에 봉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시장은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와 재산축적의 공간이다. 21세기까지 이어지는 전체주의적 체제의 비결은 주민들의 영혼을 빼앗는 사상교양과 총화, 그리고 주민들의 밥그릇과 구들장을 수령이 주고 뺏는 소유권 통제라는 두 축이다. 그래서 김정은 시대에도 개혁정책으로 경제가 조금 나아지면 다시 철퇴를 내릴 수밖에 없는 역사가 반복 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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