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중대재해법, 기업경영의 중대재해가 될 것인가

입력 2021-03-1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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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기업들이 벌벌 떨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센 규제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1월 8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과 유사하지만 중대재해법은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우선, 하청 노동자가 중대재해를 당할 경우 원청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다. 대기업이 하도급 계약을 하면서 안전관리 책임을 중소기업에 전가하는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고의나 중과실로 중대재해를 유발할 경우 사업주와 법인에 손해액의 5배까지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 사후 재해처리 비용을 과중하게 만드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 사전 안전관리 투자를 소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가장 큰 특징은 사망자가 1인 이상인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병과 가능)에 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진 사례가 거의 없다.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중간 관리자만 처벌받고 그마저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하지만 앞으로는 근로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를 유발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는 1년 이상의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이 처벌 규정이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통상적인 형사처벌에서 징역은 상한형인데 중대재해법은 1년 이상의 하한형으로 매우 엄격하다. 자칫하면 사내 교통사고에서 사망자가 나와 중대재해로 간주되면 경영책임자가 최소 1년 이상의 징역을 받을 수 있다.

당연히 기업계에서는 반발한다. 기업을 옥죄는 대표적 반기업법이라는 것. 강화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더해 중대재해법이 중복 적용되면 처벌 수위가 과도하여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주장한다. 원청 대기업의 안전 관리 범위를 벗어나는 하청 중소기업의 산업재해까지 대기업의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으면 국내 중소기업과의 거래를 줄이고 해외로 주문을 이전하거나 자동화로 대체하여 산업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반면 노동단체들은 중대재해법이 미흡하다는 입장이다. 산재 사고 사망자의 80%가량이 발생하는 50인 미만의 사업장이 사각지대 놓여 중대재해법이 실질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의 유예 기간이 부여됐다. 영세한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경영책임자를 처벌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기업을 지배하는 총수에게 책임을 물을 길은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대재해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에 안전담당 이사를 포함한 법규정은 최고경영자가 빠져나갈 수 있는 허점이다.

노사 양쪽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후진국형 인명사고가 빈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기업 입장에서 무지막지한 중대재해법이 제정된 배경은 최근 몇 년간 다수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인명 사고가 기업의 과실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발생한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에서는 무려 38명이 사망했다. 당시 화재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발주처가 공기 단축을 압박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발주 기업은 법적 책임에서 배제됐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2000명 가까운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한다. 산업재해사망률은 OECD 회원국 1위다. 세계 경제대국이라 자부하면서도 인명사고가 빈발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중대재해법의 처벌이 과도하다는 지적은 인정한다. 중대재해의 정의가 모호하고 법조문이 불명확하여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동의한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관리를 이행할 때다. 안전규제가 엄격하여 우리 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하락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글로벌 표준으로 부상하는 추세에서 안전관리는 국제 경쟁력의 필수조건이다.

우리 대기업이 안전관리를 소홀히 하는 근본적 이유는 인명 경시 풍조 탓이다. 사전에 안전관리 비용을 들이는 것보다 사후에 사고처리하는 비용이 훨씬 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업장의 안전관리 시스템을 완벽히 갖추려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매출이 수조 원에 이르는 대기업이 제조 과정의 안전관리 수준을 높이기 위해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 손실은 수백억 원에 이른다. 반면에, 인명 사고는 몇억 원 정도로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사고가 나도 안전관리 시스템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이런 사고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안전관리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한다. 안전 관리에 필요한 조직, 인력, 예산을 충당할 수 없어서다. 대기업이 위험한 작업을 외주화하면서 이에 상응하는 안전관리 비용은 지불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이 중대재해법에 저촉되지 않을 정도의 안전관리 능력을 갖추려면 납품단가에 안전관리 비용이 반영되어야 한다. 대기업 납품과 공공조달에 있어서 안전관리 예산을 별도로 책정하고 이 금액을 가격경쟁에서 제외하는 제도개선이 선행되어야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도 온전한 안전관리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재해관리 예산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 안전불감증을 불식해야 한다. 아직도 ‘빨리빨리’ ‘대충대충’ 하는 작업 관행이 팽배하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전하려면 생명을 존중하고 안전을 우선시하는 의식이 정착돼야 한다. 중대재해법이 ‘인명중시법’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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