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내셔널리즘] ① 심화하는 백신 확보 양극화…개도국은 눈물만

입력 2020-12-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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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백신 후보물질 닥치는 대로 선구매…39억 회분 이상 확보
중하위 소득국은 확보 백신 16억 회분 그쳐

절체절명의 공중보건 위기 속에서 자국 이기주의가 극대화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보에도 심각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백신 내셔널리즘이 심화하면 오히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종식하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며 협력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아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게임 체인저’가 될 백신은 이제 각국의 승인을 거쳐 접종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영국이 미국 제약업체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백신에 대해 8일(현지시간) 세계 최초로 대규모 접종에 돌입했다. 바레인이 두 번째로 화이자 백신을 승인했고 캐나다와 사우디아라비아가 그 뒤를 이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11일 화이자 백신 긴급사용 승인으로 팬데믹 사태 종식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문제는 백신과 관련된 이런 희망과 기대가 부유한 나라만의 전유물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듀크대 글로벌헬스이노베이션센터의 지난달 말 분석에 따르면 인도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16억 회분의 코로나19 백신을 선구매했다. 유럽연합(EU)이 15억8500만 회분, 미국이 10억1000만 회분, 한국이 가입한 국제 백신 공동구매 연합체인 코백스퍼실리티(COVAX Facility)가 7억 회분으로 그 뒤를 이었다.

듀크대는 “백신 후보들이 출시되기 전에도 이미 72억 회분이 선구매됐고 나머지 24억 회분은 현재 협상 중이거나 기존 거래의 선택사항으로 남아 있다”며 “개별 국가들이 자국 인구를 커버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이 백신을 구매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극화 심화로 인해 공평한 국제 배분에 이용할 수 있는 백신의 양이 줄어들고 있다”며 “고소득 국가는 39억 회분 이상을 확보했지만, 중하위 소득 국가는 보유량이 약 16억 회분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듀크대 글로벌헬스이노베이션센터는 “이런 전략은 개별 국가 관점에서 타당할 수는 있어도 글로벌 백신 보급 측면에서는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며 “중하위 소득 국가들은 전체 인구를 커버할 만큼 충분하게 백신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캐나다는 무려 인구의 5배에 달하는 물량을 사들였다”고 꼬집었다.

현재 개발 중인 약 200종의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중 극히 일부만이 긴급사용 승인을 이제 막 받은 상태여서 선진국들은 위험을 줄이고자 최대한 많은 백신 후보들을 무더기로 사들이고 있다.

“세계 인구의 14% 불과한 선진국이 가장 유망한 백신의 53% 확보”

선진국 대부분은 코로나19 백신 연구·개발(M&A)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자해 제약업체들과 우선하여 구매 협상에 들어갈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추진했던 ‘워프 스피드’라는 국가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또 지갑이 두둑해 백신 후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면서 대규모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전 세계 인구의 14%에 불과한 선진국이 지금까지 나온 모든 유망한 코로나19 백신의 약 53%를 사들였다”며 “이는 선진국 국민 전체에 백신을 세 차례 접종할 수 있는 양”이라고 강조했다.

인도와 브라질 등 일부 중간소득국가는 선진국이 아니지만, 약품 제조능력을 갖추고 있어 이를 무기로 백신 제조업체들과 선구매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제조나 백신 개발능력이 없는 페루 같은 나라는 임상시험을 펼칠 인프라를 갖춰 백신 구매 협상에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에 있는 저소득 국가들은 백신 거래 결정에서 철저히 제외되고 있다.

또 저소득 국가들은 백신 할당 과정에서의 불평등 이외에도 배포에서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 이들 국가는 화이자 백신 보관에 불가결한 초저온 물류시설이 부족하다. 코로나 백신 중 상당수가 2회 접종해야 효과를 보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정확한 예방접종 추적 능력도 없다. 하다못해 주삿바늘 공급과 같은 기본사항도 난제다.

“동등한 배포가 팬데믹 종식할 가장 빠른 방법”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먼저 팬데믹에서 빠져나오려 백신 내셔널리즘을 발휘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전 세계에 균등하게 백신을 보급하는 것이 팬데믹을 더 빠르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연구에 따르면 백신을 세계적으로 골고루 배급하는 것이 고소득 국가에만 국한된 것보다 거의 두 배나 많은 사망을 방지할 수 있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는 “불공평한 백신 배포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에 최대 1조2000억 달러의 손실을 줄 수 있다”며 “반대로 저소득 국가와 중간소득 국가에도 동등한 접근 권한이 부여되면 이런 비용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어페어스는 “글로벌 협력이 없다면 각국의 출혈 경쟁으로 백신과 관련 원자재 가격이 크게 뛸 것”이라며 “또 입증된 백신이 빈곤국에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면 절망에 빠진 이들 나라가 중요한 백신 성분 수출을 차단하는 등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백신을 보유한 국가에 대한 적개심이 극도로 높아지면서 미래 나타날 수 있는 또 다른 팬데믹이나 기후변화 등에 대한 국제 협력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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