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인동간격 폭탄', 곧 터진다

입력 2008-11-21 13:34 수정 2008-11-2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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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기업 위해 사생활은 무시? 정부 비난 목소리 고조

지난 19일 국토해양부가 아파트 인동간격(隣棟間隔, 구 동간간격)을 기존의 '건물 높이의 1배'에서 '0.5배'로 완화하는 내용의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이를 둘러싼 큰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행 인동간격 비율 1:1 상황에서도 일조권 미확보와 사생활 침해에 따른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같은 동간거리 축소는 수요자들로부터 공격당하는 건설업체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시도가 아닌가하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인동간격 축소, 업체는 좋지만 수요자는 큰 부담될 듯

인동 간격이란 공동주택단지 내 아파트 한 동과 한 동 사이의 거리로 그동안 흔히 동간 간격이라고 불렸다.

현행 건축법 시행령 55조에 따르면 인동 간격은 '채광을 위한 공동주택 간 이격거리를 창문 등이 있는 벽면으로부터 직각방향으로 건축물 각 부분의 높이의 1배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19일 이 조항을 1배 이상에서 0.5배 이상으로 완화하는 내용의 건축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인동 간격의 획일적 적용이 아파트 단지 디자인을 판상형으로 획일화하고 있는만큼 자유로운 단지 내 주동(柱棟) 디자인과 최근 아파트 공급의 주류가 된 주상복합 아파트의 단지 설계를 위해 인동 간격을 완화했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0.5배 이상은 건축법 시행령이며 각 지자체들이 조례를 통해 실정에 맞게 조정할 것이라고 했지만 시행령이 확정될 경우 각 지자체 조례가 이에서 크게 어긋나기는 힘들 것으로 보여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건설업계는 환영 일색이다. 인동 간격이 좁아지면 용적률이 늘어나 더 많은 가구를 지을 수 있다. 특히 재건축의 경우 강남권 등 인기 지역에서 인기 높은 탑상형 아파트 건축이 가능해진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현재 전반적 시장 상황이 악화된 상태라 내년 2월 이후에나 확정될 시행령에 큰 비중은 두지 않고 있다"면서도 "인동 간격이 완화되면 자유로운 단지 설계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 같은 인동 간격 완화는 아파트 거주자들에게는 적지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동 간격이 좁아지면 그만큼 단지내 쾌적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 재건축 단지에서 용적률 완화보다는 층수 제한 해제를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30층 이상 아파트를 높게 짓게 되면 현행 인동 간격 조건에 따라 동간 거리가 길어지고 주거 쾌적성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층수의 경우 주변 아파트 단지들의 민원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무작정 높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인동 간격이 축소되면 단지 내 녹지 부족으로 이어지고 결국 쾌적성의 하락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업체-입주자 동간거리 놓고 논란 잇따라

실제로 최근 아파트 단지 설계에서 동간 거리가 짧은 것을 이유로 업체와 입주예정자들이 벌이는 마찰도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단지가 지난해 동문건설과 신동아건설이 분양한 고양 덕이지구 '하이파크시티'다. 하이파크시티에서 동문건설이 짓는 '하이파크시티 굿모닝힐' 1블록과 5블록은 탑상형 아파트가 설계된 단지로 이 단지 106동과 107동, 그리고 107동과 108동은 각각 22~28m밖에 떨어지지 않은 상태.

따라서 '눈 좋은' 사람이면 앞집 주민이 뭘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라는 게 입주자들의 이야기다.

5블록의 경우 동간 거리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509동과 508동은 각 동의 모서리 간 거리가 10m에 불과하고 두 동 1호와 4호의 거실 창문 간 거리는 14m로 서로의 생활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심지어 503동1호와 505동4호의 주요 채광창인 거실 창문, 그리고 508동1호와 507동4호의 거실창문 사이 거리는 20m가 채 안된다.

입주 예정자들은 이에 대한 해결을 강력히 요구했고 결국 고양시청의 개입에 따라 설계변경이 이루어지는 선에서 해결됐다.

하지만 근본적 문제인 동간거리는 해결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고양시청 관계자는 "동간 거리가 최저 20m라고 하지만 이는 채광창이 직각으로 마주보는 상황이 아닌만큼 현행 법을 위배한 것이 아니다"며 "어쨌든 법규상 하자는 없으므로 동간 거리를 늘릴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에 임광토건이 짓고 있는 '봉담그대가 2차 아파트'의 경우 각 동을 약간 비스듬하게 지어 현행 규정을 빗겨갔다.

하지만 11월 말 현재 입주가 진행 중인 이 아파트의 일부 입주자와 입주 예정자들은 좁은 동간간격으로 인한 사생활 및 일조권 침해와 분양 당시와 다른 단지 설계 문제까지 들어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발코니 확정공사 비용 인하와 중도금 납기 연장을 요구하며 입주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경기도 용인 마북지구 대림e-편한세상 역시 동간 거리 문제가 쟁점사안 중 하나다.

용인 마북 대림e-편한세상 입주민 협의회 인터넷 카페에 따르면 이들은 용인시청에 동간 거리 산출 자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현행법 상에도 동간 거리에 따른 문제가 빈발하고 있는데 인동간격을 축소하면 이로 인한 아파트 주민들의 불만과 저항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 시장 전문가는 "인동 간격은 법 적용이 명쾌하지 않아 문제를 제기해도 이슈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동간 거리가 짧을 수록 아파트 쾌적성이 떨어지고 최근 이를 중시하는 수요자들도 많아져 향후에는 큰 논란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동간거리가 좁은 아파트는 낮은 주거 쾌적성으로 인해 집값 상승 여력도 시원치 않은 것으로 지적된다.

부동산써브 채훈식 리서치센터장은 "동간 거리가 좁은 아파트는 2000년대 초반 건축허가 승인을 받은 단지들이며 이들 단지의 경우 시세도 일반적으로 약하다"며 "특히 동간 거리는 단지 쾌적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인만큼 인동간격이 축소된 아파트는 시장에서도 인기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인동간격이 상가 수준인 주상복합 아파트 타워팰리스의 경우 고급스러운 건축기술과 평면, 마감재로 인해 입주후 줄곧 국내 최고 아파트의 자리를 지켜왔지만 3년여 만에 일반 아파트인 삼성동 아이파크에게 최고 아파트 자리를 내줬다.

이후 집값 상승세도 타 강남권 인기 아파트에 비해 약했다. 원인은 바로 이 인동간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정부에 대한 불만도 잇달아 터져나오고 있다.

한 시장 전문가는 "정부가 굳이 규제 완화 대상도 아닌 인동간격 축소를 단행한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며 "정부 논리대로라면 아름다운 아파트를 위해 쾌적함과 사생활을 포기하라는 의미냐"고 일침을 가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현 정부의 기업프렌들리를 위해 국민프렌들리, 소비자프렌들리는 묵살하겠다는 것이냐"며 "국토부의 이번 건축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늘어나는 세대 수만큼이나 단지 내부 쾌적성은 떨어질 것이 자명하고 주민들의 저항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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