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겁 많았던 '산린이'가 산 달리는 '트레일러너' 되기까지

입력 2020-07-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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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시리즈 29번째 '산' 펴낸 장보영 씨…"산에선 가장 자연스러운 나를 만난다"

▲‘아무튼, 산’의 저자 장보영 씨가 10일 서울 동작구 이투데이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아무튼, 산’의 저자 장보영 씨가 10일 서울 동작구 이투데이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2박 3일 일정으로 출발해야 했던 지리산 '화대종주'를 이젠 10시간 만에 가게 됐어요. 네발로 기다시피 올랐던 정상에 서니 또 다른 산이 보였고, 주말마다 산행을 다니다 보니 그 산을 달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달리는 사람이 된 후 목표를 세우게 된 거죠."

장보영 씨에게 산은 어느덧 세계가 됐다.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난 그에게 산은 그저 일상적인 공간일 뿐이었다.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전공을 살려 출판사에 입사해 일하던 25세의 장 씨는 어느 순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반복된 생활에서 떠나고 싶어 여기저기 찾다가 '지리산'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산이 장 씨의 삶을 뒤흔들었다.

신간 '아무튼, 산'을 세상에 내보인 장 씨를 10일 이투데이 사옥에서 만났다. 장 씨의 책은 '아무튼'의 29번째 시리즈물이다.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등 세 출판사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아무튼' 시리즈를 펴내고 있다.

"에디터 생활한 지 10년, 산 다닌 지도 10년이 됐을 때 생각이 정말 많았어요. 일을 계속해야 할지, 장거리 트래킹을 다녀와야 할지 고민이 많을 때 '아무튼' 시리즈를 만나게 됐죠. 제가 산과 살아온 12년을 정리하게 됐습니다."

부제는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이다. 여기엔 반복되는 일상이 싫어서 마주한 산을 어느새 사랑하게 된 그의 진심이 담겼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잖아요. 지리산은 워낙 유명한 산이어서 선택하게 된 거였어요. 구례 화엄사에서 산청 대원사까지 46.2km를 걷는 종주산행을 '화대종주'라고 해요. '화대종주'가 제일 유명하니 가야겠다고 결심했고 싸이월드 커뮤니티에서 '산악회'를 찾았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게 된 거죠."

장 씨에겐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얼마나 느린 시간이고 힘든 여정인지 체감조차 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 온몸이 아프고 힘들었다. 풍경 역시 처음이었다. 산 아래에서만 자란 그가 산 위에 올라가서 또 다른 산을 바라보는 건 생소한 일이었다. 힘듦과 감동을 반복한 일정이었다. 장 씨를 배려해 산악회 회원들이 '화대종주' 일정은 '성백종주'(성삼재~백무동 35km)로 바꿔줬다.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냈단 쾌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프지만 마음은 뿌듯하고 몸은 고되지만 행복한 기억이었어요. 일기장에 '내가 스물 다섯 살에 지리산을 종주했다'라고 적었어요. 그렇게 첫 산이 제게 다가온 거죠. 정상에 서서 다른 산의 능선을 보면서, 여기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산엔 무엇이 있고, 거기선 여기가 어떻게 보일지도 궁금해졌죠. 제 안에선 또 다른 꿈이 자라고 있었던 거예요. 내려올 땐 무릎도 성하지 않아서 옆으로 걷다가 지팡이 짚으면서 절뚝절뚝 걸어 내려왔지만요." (웃음)

지리산 '화대종주'를 다시 간 것은 그로부터 5년 후였다. 장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힘들게 산행했던 그 날이 생생히 떠올랐다. 2017년부턴 지리산 '화대종주'를 달리기 시작한다. 산에 다닌 지 10년이 지나면서 장 씨는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너'가 돼 있었다. 그리고 이젠 2박 3일 일정으로 출발한 산행길을 10시간 만에 달린다.

"가끔은 산이 저를 힘들게 해요. 혼자 산을 다니거나 친구들하고 다닐 땐 무리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대회가 있을 땐 출발선과 결승선, 경쟁하는 선수와 제한 시간이 있어서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으면 완주도 할 수 없어요. 이젠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좋은 기록을 내다가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나면 포기할 수밖에 없어요. 1위와 각축을 벌이면서 달리다가 갑자기 체력이 고갈돼서 페이스가 느려지면 사람들이 저를 추월하잖아요. 쓸쓸함, 패배감, 자괴감까지 느껴요. 하지만 편안하다고 행복한 건 아닌 거 같아요. 무언가를 향해 가열하게 달려갈 때 희열감이 있어요. 그래서 힘들어도 모든 순간이 의미 있어요. 가끔은 지쳤다 싶을 땐 거리를 두고 산에서 제 페이스를 찾기도 하고요."

▲장 씨는 완주조차 하지 못했던 지리산 '화대종주'를 달리는 '트레일러너'가 됐다. 그는 "산은 가장 사람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곳"이라며 "나의 모든 것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장 씨는 완주조차 하지 못했던 지리산 '화대종주'를 달리는 '트레일러너'가 됐다. 그는 "산은 가장 사람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곳"이라며 "나의 모든 것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제는 산에서 얼마나 달렸는지, 몇 군데의 산을 다녀왔는지 세지 않는다. 처음엔 세계지도에 스티커를 붙이듯 다녀온 산들을 표시하곤 했지만 이젠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마음만 먹고 준비만 하면 갈 수 있는 '우리집 뒷산'이 가장 좋은 산이기도 하다. 장 씨는 안 가본 산을 가고 싶어서 '나에게 좋은 산'을 또다시 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2011년, 2016년 다녀온 히말라야가 그렇다.

"우리나라 산들을 도장 깨기 하듯 다니다 보니 히말라야 트래킹을 알게 됐어요. 안나푸르나라는 에베레스트에 준하는 높은 산을 트래킹하겠다고 결심하고 2011년 3월 첫 직장 퇴직금으로 비행기를 끊었죠. 안나푸르나를 다 걷고 내려오니 '랑탕'이라는 히말라야의 또 다른 길을 만났어요. 그러면서 제 다리는 더 튼튼해졌고 저는 더 강해져 있었죠. 네팔의 우기를 만난 후 인도의 히말라야로 눈을 돌리게 돼요. 처음엔 두 달 일정으로 갔는데 6개월 동안 머물렀어요."

장 씨는 산이 전부다. 산에선 마음이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지를 반복한다. 산은 그에게 치열하게 오르는 곳이면서도 삶에서 잠시 이탈해서 편안하게 쉬러 가는 곳이 돼버렸다.

"산은 사람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줘요. 제가 아무리 잔뜩 꾸미고 가도 화장도 다 지워지고 옷도 다 젖어요. 제가 힘주고 있던 것들이 어느 순간 풀리는 거죠.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만나는 곳입니다. 어느 산이 제일 좋냐고요? 그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닌가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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