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완의 복지 플랫폼] 기본소득 논쟁이 던진 메시지

입력 2020-06-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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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본소득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비주류 좌파가 주장하던 아이디어였던 것이 재난과 위기를 맞아 정치권의 주목을 받으며 순식간에 중요한 정책의제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전 국민이 코로나19를 통해 국가로부터 받은 긴급재난지원금은 의도치 않게 하나의 기본소득 정책실험이 되었다. ‘이런 일이 평생 이어진다면’을 상상하고 논의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 된 것이다.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는 방법론적으로 심플하고 철학적으로 깊으며 정치적으로 매력적이다. 모든 개인에게 동일한 소득을 줘 모두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기본권적 자유,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을 소극적 자유, 돈에 매이지 않고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적극적 자유, 최소한의 삶을 동일하게 영위할 수 있는 진정한 평등을 누리자는 것이다. 자본주의 철폐 없이도 마르크스가 꿈꾸던 포스트 자본주의 사회의 정의롭고 평등한 이상을 구현해낼 간단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떤 사회에도 적용되는 초월적 제도주의가 오히려 현실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의 말이다. 예컨대 모두에게 동일한 소득을 제공하는 기본소득 자체는 평등하지만, 사회의 불평등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기본소득에 의존해서 사는 자와, 기본소득도 덤으로 받아 더 윤택해질 고소득층간의 이중구조는 지속될 것이다. 그래도 빈곤은 없애지 않겠는가? 만약 국가가 중앙정부 예산지출액을 다른 곳에 쓰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나눠주면 매달 약 50만 원을 지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보다도 낮은 기본소득으로 자유와 평등의 이상이 실현될 리는 없다. ‘기본소득’의 취지에 걸맞게 전 국민에게 적어도 100만 원을 나눠주자면 예산의 두 배가 필요하다. 만약 국가가 지금껏 해온 역할을 하게 하면서 기본소득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산술적으로 우리가 지금 내는 모든 종류의 세금을 두배로 내면 가능하다. 그래서 기본소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두배 이상의 충분한 생산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 시점에 기본소득 논쟁이 불붙는 것은 좋은 신호일까 나쁜 신호일까? 서구 복지국가들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호들갑이 없는 이유는 사회적 위험이 발생할 때 보편적으로 보장하는 사회보장제도가 이미 탄탄해서다. 문제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우리의 상황이다. 코로나19라는 ‘긴급재난’ 상황이 긴급재난지원금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과 동일하게, 우리 사회가 기본소득에 솔깃해할수록 우리의 사회경제적 여건은 어둡고, 지금의 사회보장시스템은 기대할 것이 없고, 앞으로도 나아질 여지가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전제로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기본소득 제안을 비현실적인 제안으로만 일축하기는 아깝다. 기본소득 논쟁은 기존의 복지 정책의 점증적인 발전이라는 경로의존을 과감히 떠나 사고할 수 있는 정책공간을 열어주고 있다. 사회정책의 관점에서 기본소득 논쟁이 갖는 진보적 메시지는 두 가지로 추려볼 수 있다. 하나는 그간 익숙했던 가구 단위 급여가 아니라 ‘개인’ 단위의 사회보장이라는 신선한 접근이다. 이번에 세대주에게 일괄 지급된 중앙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에 비해 경기도의 재난지원금은 이 면에서 확실히 앞섰다. 세대원이라도 자신의 명의로 신청하고 급여를 받아 소비할 수 있는 재량과 선택을 부여한 점 말이다.

또 하나는 기본소득 논쟁이 지닌 청년 친화성이다.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이 우리 사회의 청년 문제에 제일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와 비전을 안고 오늘 기꺼이 값진 땀을 흘릴 수 있을까? 어떻게 그들이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을 보람으로 알고 행복한 가정공동체를 누리는 삶을 꿈꾸게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 정직하고 견고한 희망의 사다리를 놓는 방법은 무엇인가? 결국 우리의 관심은 청년, 청년의 삶이어야 한다.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꼭 청년 기본소득일 필요는 없다. 자본과 노동 간의 간극이 커져가는 불평등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토마 피케티는 최근 그의 신작에서 보편적 기본소득보다는 25세 이상 모든 청년에게 창업자본을 지원하는 ‘보편적 자본’을 주장한다. 그게 청년일자리 지원이든, 청년기본소득이든, 청년기본자산이 됐든 우리가 통크게 귀와 마음을 열고 청년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사회투자의 길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기본소득 논쟁은 우리 사회에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강한 열망에 새로운 불을 지피고 있다. 그럼 기본소득이 정답인가? 센이 말하는 정의로 답을 대신하자. 모두에게 똑같은 기본재를 지급하는 것이 평등이 아니며, 각 사람에게 결핍된 능력을 갖추도록 하고, ‘개인이 각자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정의이다. 지금은 기본소득이 하나의 정책보다는 진지한 사회 진단으로서 논의되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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