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제로 시대:리더십의 민낯①-1] 팍스아메리카나도 팍스시니카도 없었다

입력 2020-06-01 06:01 수정 2020-06-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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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펙트] -코로나19에 종적 감춘 글로벌 리더십 -팍스아메리카나·팍스시니카는 옛말…新중세시대 도래 불안 고조

▲사진출처 AP·신화뉴시스
▲사진출처 AP·신화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에 글로벌 리더십이 아예 실종되면서 세계가 마치 흑사병이 유행했던 중세시대처럼 암울한 21세기를 살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4월 말 “세계 강대국들의 리더십 부재와 국제사회의 분열이 코로나19와의 전쟁을 더욱 어렵게 하고 빈곤국에 대한 지원을 불충분하게 만들고 있다”고 한탄했다.

구테흐스 총장의 발언은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팬데믹에 대한 대응은 11월 대통령선거에서 내가 재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중국과의 갈등을 고조시킨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단합이 중요한 시기에 국제사회가 분열됐다”며 “글로벌 리더십과 권력 사이에 단절이 있다. 실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한 리더십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 사무총장의 우려처럼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세계적인 위기에도 리더십을 발휘하는 국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G제로(0) 시대’의 도래다.

결국 미국의 주도하에 세계 평화가 유지되는 ‘팍스아메리카나’, 또는 미국을 대신해 중국이 전 세계를 이끈다는 ‘팍스시니카’ 모두 코로나19로 인해 옛말이 돼버렸다는 평가다.

뉴욕 소재 싱크탱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소장을 맡고 있는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는 지난달 6일(현지시간) 미국 외교 전문매체 포린어페어에 기고한 글에서 “미·중 양국이 이데올로기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불편한 진실은 양국 모두 코로나19 혼란으로 그 힘이 크게 약해질 것이라는 점”이라며 “이번 사태 이후 팍스아메리카나 또는 팍스시니카가 새로워질 일은 없다. 양국 모두 국내외에서 힘이 약해져 전 세계도 안보에서 무역, 전염병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무정부 상태로 표류하게 될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러드 전 총리는 미국의 리더십에 대해 “트럼프 정부의 혼란스러운 국가경영은 전 세계 다른 국가들에 미국은 자국의 위기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무능한 국가라는 인상을 남겼다”며 “더욱 중요한 것은 국가적인 이번 위기 이후에도 정치인들이 단합된 모습 대신 분열 양상을 보여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크게 제약을 받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에 대해서는 “코로나19의 지리적 기원과 치명적인 초기 대응 실패로 인해 중국의 입지는 크게 좁혀지게 됐다”며 “인도와 인도네시아, 이란 등 바이러스가 퍼진 국가들에서 반중국 정서가 크게 일어나고 있다.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산산조각이 날 위기에 있다”고 꼬집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서구권 국가들이 코로나19에 흔들리는 지금을 기회로 삼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남중국해 실효 지배를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홍콩 시민을 탄압하며 대만에 위협을 가하고 소프트파워 강화를 도모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번 팬데믹의 가장 큰 패배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FT는 코로나19에 대한 서투른 초기 대응, 그에 대한 중국인들의 분노에 찬 시위 등은 시 주석과 중국 공산당의 권력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발생에 대한 첫 번째 대응으로 ‘사태 은폐’에 나서고 이후 중국책임론을 부인하면서 ‘협박 외교’에 나서 이제 서방국가 중 중국을 우방으로 간주하는 나라는 아무도 없다고 강조했다.

저명 정치학자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달 초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위기 때 가장 효과적인 지도자들은 대중을 서로 결속할 수 있게 하는 사람”이라며 “그러나 코로나19 사태에서 세계 양대 경제국인 미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은 정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어 혼란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이 코로나19 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국의 이익만을 취하려는 이기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급기야 세계보건기구(WHO)가 새로운 희생양이 됐다. 중국이 5월 말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식에서 홍콩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고자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통과시키자 트럼프 대통령이 바로 미국이 홍콩에 부여했던 특별지위 혜택을 폐지하는 절차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중국을 편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WHO와의 관계 단절도 선언한 것이다. WHO는 개발도상국과 빈곤국의 공중보건 위기에 맞서 싸우는 국제기구인데 미·중 갈등으로 힘을 못 쓰게 되는 위기에 처한 것이다.

유럽도 코로나19 사태에 리더십이 실종되기는 마찬가지다. 유럽연합(EU)은 유엔 중심의 다자주의를 통해 팬데믹을 극복하자고 촉구하고 있지만, 유럽 지도자들은 다자주의 이상에 부합하는 단합과 연대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3월 말 유럽의회 연설에서 이례적으로 회원국들을 성토했다. 그는 “유럽이 정말 ‘하나를 위한 모두(All For One)’라는 정신을 간절히 필요로 할 때 너무 많은 국가가 ‘오직 나만 위한다(Only For Me)’라는 자세를 보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당시 유럽 국가들이 코로나19로 역내에서 처음 타격을 받은 이탈리아에 대한 의료장비 수출을 금지한 것에 격분한 것이다.

글로벌 리더십이 아예 실종된 상황이어서 급기야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4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글에서 “글로벌 무역과 자유로운 이동을 기반으로 번영하는 이 시대에 팬데믹으로 인해 시대착오적인 ‘성곽도시’가 부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흑사병을 막기 위해 고립을 자처했던 중세시대 양상이 21세기에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지프 나이 교수는 “키신저가 최근 주장했듯이 오늘날의 지도자들은 국제사회의 회복을 위해 협력의 길을 택해야 한다”며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 당시 1차 감염보다 2차 감염 확산에서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지도자들이 상기하고 국제적 연대를 위해 대중을 교육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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