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키워드] 개인의 기준(基準)-높으면 높을수록 좋고 귀한 것

입력 2017-07-1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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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장진호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지난번 미국 방문에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헌화하면서 남긴 기념사는 감동적이었다. “장진호 용사들의 놀라운 투혼 덕분에 10만여 명의 피란민을 구출한 흥남철수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으며, 그때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오른 피란민 중에 저의 부모님도 계셨다”는 대통령의 고백은 ‘미국의 도움으로 내가 태어날 수 있었고, 그렇게 태어난 내가 마침내 한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은혜를 은혜로 갚겠다는 보은(報恩)의 결의로 받아들여졌다. 이 연설로 한·미 관계가 더 탄탄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장진호 전투 기념비와 관련해 나에게 감동과 함께 생각할 거리를 준 이는 대통령 말고 한 명 더 있다. 미국 합참의장 조지프 던포드 해병대 대장이다. 그 역시 이 기념비 앞에서 연설했으며, 그중 한 줄이 여태 나를 붙잡고 있다. 5월 4일, 기념비 제막식 날에 있었던 그의 연설 장면을 한 신문은 이렇게 전했다.

<그는 아버지 조지프 던포드 시니어에 이어 2대째 해병이다. 던포드 시니어는 장진호 전투 현장에서 중공군과 백병전을 벌인 참전용사다. 던포드 합참의장은 “내가 해병이 된 것은 장진호 참전 해병들의 영향이며, 해병으로서 내가 성공했다면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려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는 중공군 3개 연대가 미군을 전멸시키려 나섰던 그날 밤을 백병전으로 버텨냈다”고 강조했다. 그날 밤은 그의 아버지가 20세 생일을 맞은 1950년 11월 27일이었다.

던포드 합참의장은 성인이 될 때까지 아버지로부터 그날의 회고를 듣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는 자신과 해병들이 바다 쪽으로 진군하면서 겪었던 백병전의 공포를 결코 말하지 않으셨다”며 “내가 해병이 된 지 7년이 지나서야 아버지와 한국전쟁에 대해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지금도 오래전에 아버지가 세워 놓았던 기준을 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고 “지금도 모든 해병이 이 전투를 배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념식에는 던포드 시니어도 참석했다.>

▲던포드 미 합참의장
▲던포드 미 합참의장
나는 “지금도 오래전에 아버지가 세워 놓았던 기준을 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던포드 합참의장의 고백이 이 연설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벌어진 아비규환의 전투, 참전용사들이 겪었을 공포와 두려움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지만, ‘기준’이라는 단어와, ‘기준을 넘기 위한 노력’이라는 구절이 삶에 대해, 사회에 대해, 나라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세워 놓은 기준이 무엇인지, 그가 그 기준을 뛰어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의 아버지는 스스로도 자신의 기준을 지키려 노력했고, 아들에게 그 기준을 보여줬으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그것을 넘어서도록 아들을 이끌었을 것이라는 점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기준이 있는 사람은 발전한다. 기준이 있는 사람이 있는 사회는 발전한다. 개인의 기준은 높을수록 좋다. 개인의 기준이 높으면 한 사회, 한 국가의 기준도 올라간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의 기준보다 개인의 기준이 크게 낮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 개인의 기준이 높지도 않은 사회의 기준을 끌어내리고 있다. 그게 드러난 것이 최근의 청문회이다. 이 나라 엘리트들의 비리와 부조리가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기준이 국민의 기준을 낮추고 있다.

나는 던포드 합참의장의 연설을 신문으로 접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직접 들은 것처럼 두 달이 지난 지금도 그 연설은 내 귓전을 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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