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빈곤층 16%의 의미

입력 2007-11-05 18:22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지난 80년대 초 필자가 경제기획원을 출입할 때였다. 당시 경제기획원에서 배포한 당해 년도 경제운용 계획(보고서)에 기재된 단 한 줄의 숫자가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극빈층 5.•••%’라는 내용이었다. 그 때는 서슬이 시퍼렇던 전두환 대통령 통치 시절이었다. 전정권은 정치•사회부문에서 억압정치를 하는 대신 국민의 숨통을 트여주기 위해 경제 발전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획원 자료에 국민의 5% 이상이 정부로부터 구호금과 구호물자를 받아야 생활이 가능한 극빈층이라는 통계가 나온 것이다. 나라 경제가 잘되고 있다고 홍보하던 정부의 발표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 필자는 이 통계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해서 기사화했다.

경향 각지의 언론사들이 필자의 기사를 전재(轉載)하거나 또는 비슷하게 따라 썼다. 그리고 상당수 신문들이 사설을 실었고, 방송은 논평보도를 했다. 정부는 이 기사가 크게 나가자 무척 아파했다. 그 당시 대다수 시민들은 우리나라가 경제성장해 극빈층이 거의 사라진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극빈층이 5%가 넘는다는 정부 통계가 나왔으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극빈층이 5%가 넘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 기사가 나가자 그 통계를 자료에 삽입했던 기획원 사무관이 담당국장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이후 기획원은 매년 발표하는 경제운용 계획에 빈곤층 통계를 빼버렸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났다. 경제규모도 훨씬 커지고 소득수준도 그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다. 그런데 최근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 노동연구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 가구의 국민 5명 중 1명(16.42%)이 ‘상대적 빈곤층’인 것으로 드러났다. 즉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자기 소득만으로 벌어들이는 시장소득(근로소득, 사업소득, 재산소득, 공•사적 이전소득 등을 합친 소득)이 중위 소득 계층의 소득에 절반도 안 되는 계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같은 상대적 빈곤 비율이 해마다 자꾸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자꾸만 도시 빈곤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통계에 따르면 1999년 15.01%이던 상대적 빈곤율이 2000년 13.51%로 떨어졌다가 2001년 14.1%, 2002년 13.63%로 들쭉날쭉 현상을 보였다. 그러다가 2003년에 14.88%, 2004년 15.97%, 그리고 2006년 16.42% 등으로 203년 이후 다시 올라가고 있다. 즉 2003년 이후 도시 가구의 소득 분배 구조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2003년 이후라면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다. 현 정권은 다른 어느 정권보다 복지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했고, 중•저소득 계층을 위한 각종 시책을 수없이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은 엷어져 몰락 직전에 와있고, 상대적 빈곤층만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집없는 사람을 위해 주택가격 안정시책을 내놓았지만, 집값은 오히려 크게 올라 서민들의 내집 마련이 이제는 공허한 외침으로 변하고 말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다고 법까지 제정했지만, 오히려 이들은 지금 직장에서 내쫓기고 있다. 기업을 살려서 일자리를 늘린다고 했지만, 정부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기업을 규제하고 간섭해 기업의 경영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래서야 나라 경제가 잘 될 리 없다. 빈곤층이 늘어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지난 몇십년 간의 경제발전과 국민 소득수준 향상을 고려한다면 지금쯤 도시의 상대적 빈곤층은 2-3% 정도에 그치는 게 정상일 게다. 16.4%라는 비율은 한마디로 충격이다. 지난 몇 십년 동안 발전했다고 떠들어댄 게, 잘 살게 되었다고 큰소리친 게 다 부질없는 소리라는 얘기다. 분명 주변을 살펴보면 대부분 소득 수준이 올라가 전보다 생활이 윤택해졌다. 그런데 왜 빈곤층이 그렇게 늘어났단 말인가. 그 이유는 그 간의 정권들이 시행한 잘못된 경제정책의 누적된 부작용이 지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실업자가 늘어나고, 내집 마련 기회는 점점 멀어지고, 직장 잃은 40-50대가 방황하고, 사교육비는 점점 더 든다. 정부가 말로는 서민을 위해 일한다고는 하지만, 현 정부의 정책들은 없는 사람을 더욱 없게 만들고 있다. 십여년 전만 하더라도 웬만한 월급쟁이들은 자신이 이 나라의 중산층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최소한 절반 이상의 월급장이들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고 있다. 한마디로 중산층의 몰락이다.

중산층의 몰락이 빚은 사회적 현상이 요즘말로 이른바 양극화 현상이다.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게 되고, 못 사는 사람은 더 못 살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중산층 몰락에 따른 양극화 현상은 바로 이 정권 들어 더 심화되고 악화됐다. 이를 증명해주는 또 다른 지표가 있다. 바로 지니 계수(Gini's Coefficient)다. 지니계수는 소득의 불공평 수준을 말해주는 지표로 계수가 1이면 완전 불공평, 0이면 완전 평등이다. 따라서 지니 계수가 높을수록 소득 불균형 현상은 확대돼 나타난다. 2002년 0.312(도시근로자 기준)이던 지니 계수가 2003년에는 0.327, 2004년 0.330, 2005년 0.333, 2006년 0.337로 갈수록 높아졌다. 그만큼 중산층이 몰락하고 빈곤층이 늘어났다는 걸 반증한다.

말로는 서민을 위하고 평등을 추구한다는 현 정권이 이뤄놓은 경제적 업적이 바로 이러하다. 중산층을 몰락시키고 빈곤층을 확대발전시킨 공헌이 바로 이들이다. 그들의 이러한 공헌(?)은 反기업적이고 反시장경제적 정책을 강화한데서 비롯되었다. 기업을 사갈시하는 풍토가 조성되다 보니 기업들이 의욕을 잃고 생산에 전력투구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전국적으로 그리고 장기간 누적되니 자연 일자리는 줄어들고, 실업자는 늘어났다. 여기다 과격노조가 기업의 생산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저런 원인들이 누층적으로 쌓여서 시민들의 경제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

해법은 간단하다. 성장을 통해서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일자리가 늘어나고 소득이 증대하면 중산층이 다시 형성될 것이고, 지니 계수는 낮아진다. 지금처럼 집권층에 반기업 정서가 도사리고 있거나, 규제 위주의 반시장경제적 독소가 남아 있는 한 가까운 장래에 중산층이 되살아나기는 힘들다. ‘經世致用 實事求是’라는 옛 성현의 가르침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현란한 수사(修辭)로 국민을 현혹시키는 게 정치가 아니다. 국민을 잘 살게 하고, 여유 있는 삶을 누리게 하는 게 바로 이 가르침을 따르는 지름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것이 지도자가 갈 길이다.

이타임즈 최재완 편집인 [choijw47@etimes.net]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오늘(20일)부터 병원·약국 갈 때 신분증 필수…"사진으로 찍은 신분증은 안 돼"
  • 김호중 클래식 공연 강행…"KBS 이름 사용 금지" 통보
  •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하면…내 마일리지카드 어떻게 하나 [데이터클립]
  • “높은 취업률 이유 있네”…조선 인재 육성 산실 ‘현대공업고등학교’ 가보니 [유비무환 K-조선]
  • 9위 한화 이글스, 롯데와 '0.5경기 차'…최하위 순위 뒤바뀔까 [주간 KBO 전망대]
  • 단독 ‘에르메스’ 너마저...제주 신라면세점서 철수한다
  • 이란 최고지도자 유력 후보 라이시 대통령 사망...국제정세 요동칠까
  • '버닝썬 게이트' 취재 공신은 故 구하라…BBC 다큐 공개
  • 오늘의 상승종목

  • 05.20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2,884,000
    • -1%
    • 이더리움
    • 4,294,000
    • -0.88%
    • 비트코인 캐시
    • 689,000
    • +0.44%
    • 리플
    • 711
    • -1.66%
    • 솔라나
    • 246,300
    • +2.11%
    • 에이다
    • 650
    • -2.4%
    • 이오스
    • 1,102
    • -1.96%
    • 트론
    • 168
    • -1.18%
    • 스텔라루멘
    • 148
    • -0.67%
    • 비트코인에스브이
    • 92,300
    • -1.44%
    • 체인링크
    • 23,110
    • -0.22%
    • 샌드박스
    • 603
    • -1.95%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