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집단소송,‘6개 허들’ 넘어야 겨우 소송진행… 투자자 증거확보 ‘산 넘어 산’

입력 2017-01-19 10:22 수정 2017-01-2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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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만에 첫 판결… 각종 규제 ‘발목’ 5건만 본안소송 허가… ‘미국식 디스커버리’ 도입 법개정 추진

2005년 증권집단소송 제도를 도입한 지 12년 만에 첫 선고 결과가 나온다. 대표 당사자가 소송을 수행하고 판결의 효력을 집단이 공유하는 집단소송제도가 이렇게 드물게 진행되는 것은 그만큼 소송제기 요건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손해배상 규모가 천문학적인 액수에 달하는 등 소송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기업의 부담도 크기 때문에 요건을 강화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소송 남용’, ‘경기 위축’ 등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만들었던 규정들이 오히려 제도 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제도 도입 이후 법원에 접수된 증권집단소송은 총 9건이다. 이 중 허가를 받은 사건은 5건에 불과하다. 12년 동안 5건의 본안소송만 시작된 것이다.

◇사실상 6심제… 기업 상대로 증거 확보 쉽지 않아 = 증권집단소송은 소액투자자들의 피해를 보다 효율적으로 보상하기 위해 도입됐다. 일부 투자자가 소송에서 이기면 소송 반대 의사를 밝힌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투자자들도 함께 보상받도록 했다. 투자 피해자들이 높은 소송비용을 부담하면서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기업에 책임을 묻기 위한 목적도 있다.

하지만 12년 동안 단 5건의 사건만 본안소송에 가는 등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법조계에서는 제도 활성화를 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사실상 6심제로 운영되는 소송허가결정 절차를 꼽는다. 집단소송을 하려면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허가 결정을 받더라도 상대방이 불복해 즉시 항고할 수 있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소송허가 결정까지 평균 48개월이 걸린다.

투자자 측에서 기업이나 정부기관을 상대로 증거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은 ‘법원에서 문서제출 명령이나 문서송부 총탁을 받은 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제출이나 송부를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다만 국가 안전보장, 감사·감독 등에 대한 문서나 기업의 영업 비밀 관련 문서 등은 제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피고 측에서 여러 핑계를 대며 문서 제출을 미뤄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집단소송의 대상이 증권 관련 자본시장법 위반에만 한정돼 있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법무법인 한누리의 김주영(52·사법연수원 18기) 변호사는 “보통 소송을 할 땐 여러 가지 청구 원인을 병합해 하는 게 일반적인데 (현재 법으로는) 이 제도는 여러 원인을 하나로 묶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세창의 김현(61·17기) 변호사는 “증권뿐만 아니라 전 분야로 확대돼야 집단소송제도가 진정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판결 효과가 모든 사람에게 미치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에 가장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집단소송 분야 확대…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 집단소송을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망 사건과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 등을 봤을 때 소비자들이 ‘을’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박영선 의원은 지난해 소비자분쟁, 환경 등 전 분야로 집단소송제를 확대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김주영 변호사는 “소비자들을 위해 집단소송을 다방면에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도 “소비자소송은 ‘제외신고(opt-out)’를 채택한 증권집단소송과 달리 ‘참가신고(opt-in)’ 방식으로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소송에 반대하는 사람을 제외시키는 방식이 'opt-out', 소송에 참여하길 원하는 소비자들이 의사를 밝혀 집단소송에 참가하는 방식이 'opt-in'이다. 소비자소송의 경우 피해자들의 협조 없이 인적사항은 물론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탓이다.

개정안에서는 일반 민사소송에 비해 피해자 입증 책임도 완화됐다. 일종의 미국식 ‘디스커버리 제도(증거개시제도)’다. 디스커버리는 소송 전 재판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증거 조사를 먼저 하는 제도다. 다만 미국과 달리 소송 중에 증거를 내도록 했다. 피고 측의 답변이 불충분하다고 판단되면 법원이 석명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석명에 응하지 않으면 법원은 사실상 원고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김주영 변호사는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문서제출 명령을 강화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이 문서제출 명령에 불응해도 제재가 너무 약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민사사건의 80% 이상이 화해 결정으로 끝나는 것을 예로 들며 오히려 분쟁이 줄어들 수 있다고도 했다. 김현 변호사도 “특히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정치적 약자가 소송을 냈을 때 정보가 상대방에 있어서 불리하다”며 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물론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기업들의 영업비밀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밑져야 본전이라는 식으로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채이배 의원은 ‘즉시 항고제’를 개선한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내놓기도 했다. 소송허가 결정에 피고가 불복하더라도 법원에서 별도로 집행정지명령을 받지 않는 이상 본안 소송을 진행할 수 있는 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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