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성과를 논할 염치

입력 2016-12-0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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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자본시장부 기자

한때는 리테일 부서가 증권사를 먹여 살리던 시절이 있었다고 K 씨는 말했다. 지금껏 안일하고 나태하게 살아오지 않았다고도 했다. ‘리테일 점포 혁신’이라는 이름이 붙은 회사 측 설명회를 다녀온 뒤다. 사실상 ‘구조조정 대상자 설명회’였다.

모기업이 파견한 노련한 임원은 “윗선은 이미 당신들을 포기했다. 구조조정하면 된다. 그러나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원 조정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며 꽤나 모욕적인 언사로 참석자들을 구슬렸다. 또, “세상이 이렇게 변하는데 여러분은 발전이 없다”고 꾸짖었다. 기사를 쓰자 사측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 회사 리테일이 좀 널널한 편이긴 해요.”

조직에서 뭔가 잘못됐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람을 탓하는 것이다. 개개인이 좀 더 창의적이었다면, 좀 더 부지런하고 전투적으로 일했다면, 좀 더 조직에 헌신적이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가장 쉬운 ‘남 탓’이 자행되는 셈이다.

역대 가장 부지런한 ‘일벌레 장관’으로 통하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여기에 속한 것은 유감이다. ‘달그닥 훅’ 형편없는 실력으로도 명문대에 들어가고 자격 없는 사람들이 국정을 농단한 촌극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는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성과 연봉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우리 경제는 위기 상황이며, 생존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그를 비롯한 나랏님들은 늘 말한다.

누구의 생존을 위해 누구의 뼈를 깎겠다는 것인가. 금융, 조선, 해운 산업의 위기는 K 씨 같은 노동자 개개인의 게으름과 무지함에서 촉발했나. “나는 아무 잘못이 없고 배에 탄 사람들이 잘못”이라는 식의 망언이 횡행하는 요즘, 성과주의가 ‘성과 후려치기’가 아닌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신뢰는 사라진 지 오래다. 부지런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염치가 있는 리더라면 그것부터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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