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산업은행의 ‘아킬레스건’

입력 2016-10-04 11:17 수정 2016-10-0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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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기업금융부장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구조조정의 중추적인 기관은 예금보험공사였다. 외환위기 때문에 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졌고, 정부는 예금자 보호 명목으로 예보를 통해 은행과 기업에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당시 예보의 한 팀장은 업계에서 ‘갑 중의 갑’으로 불렸다. 자금을 집행하고 부실기업을 관리하는 그의 말과 판단은 굴지의 기업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대혼란 속에서 곧 법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개인 비리 의혹을 받았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총력을 다하던 예보는 이후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예보를 통한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이 혈세 논란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예보의 구실은 이후 공적자금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축소됐다. 요즘 예보를 구조조정 기관으로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구조조정에서 2000년대 중후반 예보의 바통을 이어받은 곳은 금융회사를 감독하는 금융감독원이었다. 금감원은 1997년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기관을 통합해 만들어졌다. 전 금융기관을 검사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조직이다. 금감원은 이런 검사권을 바탕으로 채권은행을 움직였다. 은행들이 제각각 논리에 따라 기업 구조조정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금감원이 나서 이해관계를 조정했는데, 이 바탕엔 ‘검사권’이 있었다. 검사는 곧 제재와 징계를 의미한다. 은행이 금감원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던 금감원도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기업 구조조정에서 힘을 잃어갔다.

금융당국은 2011년 2월 17일부터 22일까지 무려 7곳의 저축은행의 영업을 정지시켰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고, 각종 투서가 난무했다. 결국, 저축은행에서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일부 금융당국 간부는 법의 심판을 받았다. 일부 금감원 팀장은 구속되기도 했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감원의 한 간부는 기업에 특혜 대출을 종용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고, 지금도 법적 공방을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의 신뢰가 땅에 떨어질 즈음, 기업구조조정의 ‘헤게모니’를 이어받은 곳이 바로 산업은행이다. 사실 산업은행은 줄곧 기업 구조조정의 중심에 있었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을 하는 데 있어 자금력을 가진 산은은 주요한 ‘도구’였다. 그런데 산은 역시 최근 질타를 받고 있다.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과정에서도 여러 비난을 받고 있다. 채권단 시각을 고집하다 보니 거시경제 차원에서 물류대란을 해결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은에 있어 아킬레스건은 개인 비리로 보인다. 예보, 금감원 등 한때 기업 구조조정의 원톱으로 불렸던 기관들이 정책적 잘못보다는 개인 비리에 무너졌다는 전례에서다.

한때 ‘왕회장’으로 불리며 막강한 힘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강만수 전 산은 회장은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산은은 앞으로 상당 기간 기업 구조조정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공적자금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예보나, 관권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금융감독기관이 산은을 제치고 다시 기업 구조조정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산은 직원들의 비리를 시스템적으로 막으려는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 이럴 때는 금감원을 활용하는 게 한 방법일 수 있다. 현재 금감원은 산은의 건전성만 점검하고 있다. 검사 범위를 전 영역으로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장에선 계속해서 산은과 투자은행(자문사), 회계법인 간 ‘검은 공생’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자문사와 회계법인 선정 과정이 다른 공기업에 비해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개인 비리가 터지면 산은은 아무리 정책적으로 성공해도 추락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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