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9월 4일 이애라-조국을 위해 온몸 불사른 여성 독립운동가

입력 2016-09-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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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명 편집부 차장

“… (선생은) 품성이 현숙 효순하여 범사에 관후하였다.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양육사업에 종사하다가 서기 1919년 3·1독립만세 때에 애국부인회를 지도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서울 평양 공주에서 옥중생활을 했다. 그 후에 부군 이규갑 씨가 독립운동을 하는 시베리아로 밀행하다가…체포돼 가혹한 고문을 받고…순국하다.” 충남 아산시 영인면 월선리에 있는 ‘충국순의비’ 비문 중 일부다.

9월 4일은 이애라(李愛羅·1894. 1. 7~1921. 9. 4)가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먼 이국땅에서 순국한 날이다. 이애라는 서울에서 시중 이춘식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이애일라(李愛日羅), 이심숙으로도 불렸다. 이화학당을 졸업한 이애라는 독립운동가 이규갑(李奎甲)을 만나 스무 살에 결혼하고 공주 영명학교와 평양 정의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전개되자 남편과 한남수, 김사국, 홍면희 등과 비밀리에 연락하면서 ‘한성정부’로 알려진 임시정부 수립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독립운동의 열악한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20년 애국부인회에서 모금운동을 펼쳤다.

서울 아현동 고개에서는 이애라가 딸을 업고 가던 중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며 일경이 100일밖에 안 된 아기를 집어던져 절명하게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이애라는 아기의 비명을 들으며 체포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출옥 후에도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채로 천안 양대여학교 교사로 일했으나 계속된 체포와 고문에 시달렸다.

이애라는 결국 러시아 망명을 결심했지만 망명 도중 또다시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의사인 시댁 조카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한 이애라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군사관학교 교장이던 남편을 만났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며칠 후 어린 두 아들을 남기고 순국했다. 장대명 편집부 차장 dm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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