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7월 19일 여운형-좌우합작 외치다 암살당한 중도좌파 정치가

입력 2016-07-1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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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미래설계연구원 연구위원

여운형은 1886년 5월 25일에 태어나 1947년 7월 19일 암살당한 항일운동가이자 중도좌파 정치가다. 호는 몽양(夢陽). 독립투사 김규식은 “우리는 한 위대한 혁명투사를 잃었을 뿐 아니라, 유일 목표인 신국가 건설을 위하여 전 민족이 합작으로부터 완전 통일에 나아감으로써 최후 목적을 달하기를 제창하여 이에 최종까지 노력하던 지도자를 상실하였다. (중략) 이는 곧 민족 전체의 손실이다”라고 애도했다.

경기 양평군에서 나서 우무학당을 졸업한 그는 1907년 청년 교육에 뜻을 품고 광동학교를 세웠다. 7년 뒤에는 중국 난징(南京) 진링(金陵)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중단했다. 그는 미국인이 운영하던 서점 협화서국에서 일하다, 1918년 신한청년당을 조직해 프랑스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한국 독립을 청원할 대표로 김규식을 파견했다.

이듬해 상하이(上海)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임시의정원 의원이 됐다. 1920년엔 고려공산당에 들어갔고, 1929년에는 영국의 식민정책을 비판했다가 3년간 복역했다. 1944년 일본이 패망할 것으로 보고 비밀단체인 조선건국연맹을 만들어 위원장에 올랐다.

1945년 드디어 해방이 되자 그는 건국연맹을 확대해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9월엔 이를 기반으로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해 스스로 부주석이 됐다. 하지만 우익의 반대로 미 점령군 당국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1946년엔 좌익 단체 29개를 규합한 민주주의민족전선의 공동의장으로 활동했다. 5월 미소공동위원회가 휴회된 후 김규식 등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벌였다. 1947년 5월에는 근로인민당을 창당해 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으나 반대 세력에 10여 차례 테러를 당한 끝에 극우파 한지근에 의해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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