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도박 ‘브렉시트’] ‘권태기’ 영국, 이혼도장 찍을까’

입력 2016-06-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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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머런, 2010년 정권확립 위해 ‘EU 탈퇴’ 강수

총리되자 ‘브렉시트 국민투표’ 부메랑 궁지 몰려

“찬성파 주장 사실 아냐” 잔류 지지 호소에도

“일자리 부족·사회복지제도 걸림돌” 여론 팽배

글로벌 경제위기 ‘새 뇌관’으로 부상

“영국은 유럽공동체 안에서 편안하다. 고립된 존재 등을 꿈꾸고 있지 않다. 우리의 운명은 공동체 일원으로서 유럽에 존재하는 것이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1988년 9월 벨기에 브루제에서 한 연설 중 한 대목이다. ‘영국병’에 찌든 영국을 시장경제국가로 살려낸 철의 여인조차도 영국의 유럽공동체(EC), 현 유럽연합(EU) 탈퇴는 입에 올린 적이 없다.

1975년 이후 영국 지도자 중 그 누구도 거론한 적이 없는 영국의 유럽공동체 탈퇴를, 정치 경력 20년이 갓 넘은 젊은 총리가 호기로 내뱉었다가 된서리를 맡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는 G2로 부상한 중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주춤해지는 가운데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의 끝 자락에서 다시 뒷걸음질치는 세계 경제에 새 뇌관으로 부상했다. 영국 제56대 총리인 데이비드 캐머런, 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이‘판’을 과연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7일(현지시간) 영국의 젖줄 템스강이 바로 보이는 사보이 플레이스에서 캐머런 총리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은 23일 치러지는 브렉시트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위해 등록을 하는 마지막 날. 최근 여론조사에서 브렉시트 찬성파가 우세한 것으로 나오면서 캐머런 총리의 속은 더욱 타들어가고 있을 터. 민간 싱크탱크 ‘영국이 생각하는 것(What UK Thinks)’에 따르면 5월 27∼6월 5일 실시된 최근 6개 여론조사에서 부동층을 제외한 기준으로 환산해 취합하니 브렉시트 찬성이 51%, 반대가 49%로 나왔다. 지난달 12일 이후 처음으로 브렉시트 찬성이 근소하게 우위를 보인 것이다.

캐머런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브렉시트 찬성파의 주장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잘못된 정보에 따라 탈퇴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며 영국의 EU 잔류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 등 브렉시트 찬성파의 주장에는 6개의 완전한 오류가 있다며 영국이 유로존 채무 위기에 휘말릴 것이라는 우려와 EU를 탈퇴하면 EU에 기부금을 줄이고 그만큼을 영국의 사회 복지로 돌린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영국이 EU에 가입하지 않거나 세계무역기구(WTO) 등 대부분의 중립적인 제3자 기관에서 이탈하면 영국 경제에 타격이 될 것으로 분석됐다고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23일 투표할 때 (EU와의) 자유무역이 당신들의 생활, 고용, 연금, 여행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잘 생각하고 투표해 달라”고 강조했다.

2013년 1월 23일, 캐머런 총리가 런던시티 연설에서 브렉시트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2017년 실시하겠다고 처음 발언할 때만 해도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지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투표 자체가 유효한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정권 기반을 다지겠다고 내던진 캐머런 총리의 섣부른 내기는 판을 키우고 말았다.

영국에서 EU 탈퇴론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건 2011년 유로존에서 진행된 채무 위기가 도화선이 됐다. 유로존은 당시 출범 이래 최악의 위기에 직면, 영국에서는 “유로존에 속하지 않아 다행이다. EU에서도 탈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불길처럼 일었다. 여기다 토니 블레어 정권 시절 동유럽 등 EU 신규 회원국에서 이민자들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넘쳐나는 저렴하고 질 높은 노동력은 호황기에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일자리 부족과 사회복지제도의 걸림돌이라는 불만을 사회에 만연하게 했다.

캐머런 정권이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카드를 꺼내든 건 이보다 앞선 2010년 총선이 계기였다. 당시 여당인 노동당은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 자본 투입 등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면서 정권을 잃었다. 그 대신에 탄생한 게 보수당과 자유민주당 연립정권, 특히 보수당 의원 중에서도 ‘유로 회의론자’가 많이 당선됐다.

그러다가 2011년 7월 EU에 대한 주권 위양을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2011년 유럽연합법’이 성립, 이에 기세가 등등해진 보수당 유로 회의론자들은 같은 해 10월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동의서를 제출했다. 이는 하원에서 부결됐지만 당의구속에도 불구하고 80여명의 대량 이탈자를 내 정권에 압력을 가했다.

이런 가운데 맞이한 2011년 말 EU 정상회의에서 EU의 신재정협약 체결에 대해 영국 만 반대 의사를 표시, 이 때부터 영국의 EU 내 고립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배경에는 금융거래세 도입 등에 관해 영국의 의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과 재정 주권의 일부 포기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이듬해인 2012년에 들어서면서 캐머런 총리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기고를 통해 공식적으로 국민투표 실시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뒤이어 영국과 EU의 새로운 관계를 표명하는 연설로 이어졌다. 이 연설에서 캐머런 총리는 EU의 기본법인 리스본 조약 개정으로 EU에서의 주권 회복을 포함시키는 것을 제안,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국회 회기 중인 2017년까지 ‘브렉시트’ 여부를 직접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선언했다.

이렇게 해서 캐머런 총리는 1975년 이후 영국 지도자 중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내기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용어설명 : 유럽연합(EU)

제2차 세계 대전의 반성에서 독일과 프랑스에 의해 1952년 설립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가 기원이다. 이후 설립된 유럽경제공동체(EEC)로 1993년 정식 출범했다. 영국은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C)에 가입, 2000년대 이후 소련의 영향 아래에 있던 발트 3개국 등 여러 나라가 참여했다. 현재 회원국은 28개국. EU 기본 조약인 ‘리스본 조약’은 회원국의 자발적 탈퇴를 인정하고 의사 표명으로부터 2년의 유예 기간을 갖는다. 영국이 탈퇴할 경우, 이 사이에 EU와의 무역 협정을 체결해야 하는 등의 절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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