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공간] 나무도 아프고 사람도 아프다

입력 2016-02-23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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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시인

수액은 나무의 피 같은 것이다. 언 땅에서 봄을 기다리던 고로쇠나무는 입춘이 지나면 땅속의 심장인 뿌리를 서서히 가동하기 시작한다. 나날이 달라지는 햇빛 속에서 새싹을 준비하는 가지들에게 물을 날라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수만 지나도 사람들은 그의 몸 여기저기 구멍을 내고 플라스틱 파이프를 박아 수액을 받아내기 시작한다. 옛날 사람들은 속병에 좋다 하여 곡우 들 무렵 나무의 단물을 받아먹었다지만 지금은 대량으로 채취하여 돈벌이 수단이 된 지 오래다.

한때 보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살아 있는 곰의 몸에 파이프를 꽂고 쓸개즙을 내먹는가 하면 그것으로 해외관광 상품을 만들기까지 했다. 방어 불능의 생명에 대한 인간의 약탈이다.

나무의 수액이나 곰의 쓸개가 인간의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단지 쾌락과 호사를 위하여 남의 몸에 손을 집어넣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보다 하위의 존재들에 대해서 잔혹하다. 동식물에만 손을 대는 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간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일테면 자본이나 제국의 폭력성에 이르면 특정한 계층, 또는 주변부 국가나 대륙 전체에 거대한 파이프를 박고 그들이 가진 것을 빨아들이기도 한다.

곡우 무렵 산에 갔다가

고로쇠나무에 상처를 내고

피를 받아내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도

무엇이 모자라 사람들은

나무의 몸에까지 손을 집어넣는지

능욕 같은 그 무엇이

몸을 뚫고 들어와

자신을 받아내는 동안

알몸에 크고 작은 물통을 차고

하늘을 우러르고 있는 그가

내게는 우주의 성자처럼 보였다

성자(聖者)

지난해 세수가 2조 몇 천억 원이 더 걷혔다고 한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월급쟁이들의 유리지갑과 인상된 담뱃값이 세수 증대에 특별하게 기여했다고 한다. 특히 국민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담뱃값을 인상하고 거기에 빨대를 박는다는 것은 정책의 역설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국가의 민낯이기도 하다. 담배는 중독성이 강한 데다 그 연기로 고단한 삶의 시름을 달래고자 하는 서민들에겐 설사 그것으로 지갑에 구멍이 뚫리더라도 저항 불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무에 새살이 돋듯 일상화된 고통은 쉽게 면역성을 갖기 마련이다.

산에 가면 흔하디흔한 고로쇠나무에서 수액을 좀 거둔다고 고로쇠나무의 씨가 마르거나 산천의 풍경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몸에 서너 개씩의 물통을 차고 벌서듯 서 있는 나무들에게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연상하는 건 문학적 상상력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 인디언 부족들은 나무를 베면 미안하다고 그 밑동에 자신들의 담배를 피워주었다고 한다. 고로쇠나무는 아팠을 것이다. 봄을 맞을 준비에 한창인 어느 날 차디찬 드릴이 몸을 뚫고 들어올 때 그는 전율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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