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례로 평가받는 것은 2000년 6월 당시 이뤄진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만남이다. 특히 당시 의약 분업 사태와 관련해 김 대통령과 이 대표가 만나 합의를 끌어내면서 의약분업이 시행되기도 했다.
이날 회담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독대가 진행될 수도 있지만 가능성을 낮게 보는 분위기다.
이어 “과거 김영삼 대통령이 이회창 총리를 쓰셨을 때 많은 사람이 이 총리가 할 말은 하고 쓴소리하는 모습을 봤다. 그것이 그분을 두 번이나 대권후보로 밀어 올렸다”며 “국민은 대쪽 총리, 할 말 하는 총리에 대해 항상 평가한다”고 부연했다.
앞서 이 대표는 17일 개혁신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정부 신임 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이 거론된 데 대해...
2002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이회창 후보가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57만 표(2.3%) 차이로 패하자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투표지 분류기 이용에 의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개표집계 전산시스템 증거 보전을 요구하며 대통령 당선무효 소송을 걸었다.
이에 대법원에서는 한나라당이 선정한 80개 위원회의 1104만9311장의...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는 영남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해 김윤환, 이기택 등 중진 의원들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켰습니다. 이때 ‘공천 학살’이라는, 다소 과격한 말까지 나왔지만, 한나라당은 원희룡, 오세훈 등 새 인물을 적극적으로 수혈하면서 제1당 자리를 차지했죠.
18대 총선에선 친이(친이명박)계의 공천 주도로 친박(친박근혜)계가 대거 공천에서...
자유당 시절 부정선거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안기부가 북한에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청한 총풍사건,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아들에 대한 병역비리에 대한 허위사실을 폭로한 김대업 사건(이른바 병풍사건), 2012년 대선을 며칠 앞두고 오피스텔에서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달아 오피스텔을 국회의원이 점검했던 사건, 최근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등이다.
이...
이회창 당시 무소속 후보 역시 그해 11월 대구 서문시장에서 30대 남성으로부터 계란을 맞은 바 있습니다.
흉기 피습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06년 5월 20일 흉기에 공격당한 사건이 대표적인데요. 당시 한나라당 대표이던 박 전 대통령은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신촌의 한 백화점 앞에서 열린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의 지원 유세장을 찾아 단상에 오르던...
윤영찬 의원은 페이스북에 “김 의원은 노무현의 낮은 지지율을 이야기하며 정몽준이 치고 올라와 대선후보가 돼야 이회창의 집권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면서 “이 사건으로 김 의원은 ‘김민새’(김민석+철새)라는 오명을 썼다”고 적었다.
조응천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김민새’라는 별칭이 붙었던 분이 어느새 완전 친명(친이재명)...
교육 관련 유튜버 미미미누는 “잼버리 사태, 누구 잘못인가?”라는 물음에 입을 다물지 못하며, 충주시 공무원이 겸 유튜버 김선태는 “이회창·정동영·홍준표·이재명 대통령 후보 중 가장 아쉽게 떨어진 사람을 고르시오”라는 질문과 함께 “이들 중 투표한 후보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가장 어려운 질문은 인물 퀴즈입니다. 인물...
이회창 총재가 차떼기하고 검찰에 자진해서 찾아간 쇼도 안 먹혔는데 두번째 하면 먹히겠나”라며 “별건 수사가 진행되는 모습에 화가 나서 ‘나를 조사해라’하고 간 것은 심정적으로 이해하지만 정치인은 내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문제다. 그래서 ‘국민이 쇼로 볼 것이다. 안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간접적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1997년 김대중ㆍ이회창ㆍ이인제 후보가 맞붙은 10대 대통령선거에 TV토론이 활용되면서 청중 유세는 줄기 시작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청중은 빠르게 디지털 속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단상 위 확성기는 여전히 그 자리다.
불과 석 달 전 대선에서 ‘유세 버스 참변’을 겪고도 매일 아침 도로 한가운데 불법 정차해 있는 유세 차량을 보면 과연 그들은 알을 깰 의지가...
서울대 법대 출신 판사였던 이회창 전 총리는 1997년·2002년 유력 후보로 대선에 나섰지만, 고배를 마셨다. 2007년에도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3위에 그쳤다. 역시 서울대 법대 출신인 이인제 국민의힘 상임고문 역시 ‘불사조’라는 별명에 걸맞게 15대, 17대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각각 3위와 6위로 낙선했다.
또 다른 서울대 법대 출신 정치인인 이낙연 전...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역대 최소 격차 기록을 갈아치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실시된 대선에서 1∼2위 후보 간 격차가 가장 작았던 선거는 1997년 15대 대선이었다.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득표율 40.27%로 38.74%를 얻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상대로 신승을 거뒀다. 득표율 차는 1.53%포인트였다.
노-정 단일화는 이회창 후보에게 지지율이 크게 밀린 2, 3위 후보의 절박한 승부수였다. 어차피 단일화 실패 시 필패가 예고된 상황이었다. 극적인 단일화가 가능했던 이유다. 윤-안 단일화는 지지율 격차가 컸던 DJP연대나 문-안 단일화 때와 비슷하다. 안 후보의 지지율은 8% 정도다. DJP는 공동정부 카드로, 문 후보는 안 후보 사퇴로 단일화를 이뤘다. 이번에도 결국...
1997년 추석 전후로 꺾였던 제15대 대선의 ‘이회창 대세론’, 2012년 박근혜 대세론 등 압도적 우위를 형성하는 흐름이 있었다. 제16대 대선의 노무현 후보가 역전한 단 한번을 제외하곤, 직선제 이후 역대 대선 100일 전후의 여론조사에서 1위 후보가 청와대에 입성했다. 어김없이 대세론이 반영된 결과다.
역대 가장 낮은 득표율로 당선된 건 36.64%의 노태우...
2002년 추경 때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정부에 먼저 추경 편성을 요구했으나, 구체적인 규모·내용에 개입하진 않았다.
반면, 올해 추경에 대해선 여야 대통령 후보가 앞다퉈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요구액은 35조 원 내외다. 정부안(14조 원)의 2배가 넘는다....
반면 초반 지지율 1위로 당선이 유력하다고 평가받던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독자 출마한 이인제 국민신당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끝끝내 이루지 못해 불리한 상황에 놓였고, 결국 대선에서 패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도 단일화가 화두였다. 주인공은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주역으로 대선...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 아들 병역 논란을 수사한 바 있다. 당시 서울지검 특수1‧3부를 포함한 4개 부서를 투입해 85일에 걸쳐 수사를 벌였고, 수사 결과 ‘사실무근’으로 마무리됐었다. 다만, 장기간 검찰 수사로 이 후보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에게 지지율 1위 자리를 내줬다.
선거를 앞둔 검찰 수사에 대해 법조계에서도 여러...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호남에서 93.4%,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TK 지역에서 75.6%의 표를 얻었다. 17대, 18대에서도 각각 양 지역 모두 70, 80%대의 몰표를 받았다. 하지만 19대 대선의 경우 이 같은 ‘몰표’ 현상이 다소 옅어졌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과거에는 지역주의 바람이 노골적으로 불었다면 지금은 구도가 그 정도는 아니다”며...
그동안 충청대망론을 한 껏 높이며 대선주자로 나섰던 고(故)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이인제 전 의원, 안희정 전 충남지사,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등은 모두 최종 승자는 되지 못했다.
윤 후보는 이어 재경광주전남향우회 주최 초청간담회에 참석해 “제게 호남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라며 “제가 대통령이 되면 절대 호남...
101일 전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20.4%)가 이회창 후보(30.2%)에 밀렸지만, 정몽준 후보와 극적으로 단일화를 이루면서 이 후보를 2.3%포인트(P) 차로 따돌리고 당선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는 이 같은 ‘대세론’을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체로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오차범위 안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