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엄마의 마음으로

입력 2015-09-2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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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여경들이 화제다. 아무도 잡지 못했던 절도범을 끈질긴 노력 끝에 검거하고, 자살하려는 사람을 끌어안아 살렸다. 남자 경찰관들과 다른 모습으로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여경들의 활약이 감명 깊고 흐뭇하다.

부산 중부경찰서 남포지구대 차민설 순경은 2주일 전 자갈치시장 안벽(岸壁)에서 “아들이 세상을 떠나 살기 싫다”는 사람을 구했다. 임용된 지 넉 달밖에 안 된 새내기 여경은 자살하려는 남자를 뒤에서 끌어안고 설득했다. 그 남자는 “딸내미가 돼 드릴 테니 언제든 지구대로 찾아오라”는 차 순경의 말에 마음을 돌렸다. 남자 경찰관이 끌어안았어도 그렇게 됐을까?

그를 구한 뒤 차 순경이 언니에게 전화해 “시골에 계신 편찮은 아버지가 생각나 혼났다”며 울었다는 이야기와, 자살하려는 남자를 뒤에서 끌어안은 사진이 많은 사람들을 흐뭇하게 했다.

서울 동작경찰서의 강력1팀 정지윤 경장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서울 시내 상점 18곳에서 금품을 훔친 상습 절도범을 검거했다. 기동대 근무를 마치고 강력팀으로 발령받은 지 한 달 만이었다. 정 경장은 CCTV를 분석하다 보니 범인이 마치 잡아보라고 놀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 구입한 오토바이를 타고 범인의 추정 이동경로를 수차례 다니다가 노숙하던 그를 잡을 수 있었다. 세심한 범죄 분석과 치밀한 검거 노력 덕분이었다. 남자 경찰관과 다른 점이다.

이런 여경들의 큰언니가 이금형 전 부산지방경찰청장이다. 올해 57세인 그는 38년 전 고졸 순경으로 출발해 경찰 내 서열 2위인 치안정감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성폭력·여성·청소년 분야에 대해 경찰의 관심을 일깨우고, 여성도 경찰로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씨가 최근 발간한 자전에세이집 ‘공부하는 엄마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는 ‘순경→경장→경사→경위→경감→경정→총경→경무관→치안감→치안정감’으로 이어지는 그의 경력과 노력이 잘 소개돼 있다.

‘경찰 이금형’의 힘은 자식을 키우는 여성의 마음, 엄마의 생각이었다. 우리나라 범죄 피해자는 90% 이상이 여성·아동·청소년·노인·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다. 이런 약자들의 아픔을 엄마의 마음으로 헤아리고 보살핀 게 ‘대한민국 대표 여경’이 한 일이었다.

낸시 펠로시 전 미국 하원 의장(현재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은 아이 다섯을 낳고 기르다가 마흔일곱에 하원의원이 된 인물이다. 그가 맡았던 하원의장은 대통령이 유고일 때 부통령 다음의 승계권자다.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여성이었던 그는 5남매의 엄마라는 본분과 정치인이라는 공적 지위를 잘 조화시키며 살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낸시 펠로시는 자전에세이 ‘자신의 숨겨진 힘을 깨달아라’(원제 ‘Know Your Power’)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정치에 몸담게 된 것 자체가 엄마 역할의 확장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아내이고 엄마이며 할머니다.”

그렇다. 어느 분야든 사회의 우두머리 역할은 엄마 역할의 확장이다. 엄마로서 생각하고 엄마로서 일하는 사려와 배려, 분별이 사회를 아름답고 살 만하게 만들어가는 힘의 원천이다.

김일곤이라는 범죄인이 요즘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아무런 죄의식도 없어 보이는 그의 범죄 경력과 행태는 특히 여성들을 불안하게 한다. 그런데 어찌 그 사람뿐일까.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김일곤과 마주칠 수 있다. 연쇄 살인범 유영철 못지않은 범죄 충동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 늘 불만과 울화의 포로가 되어 나날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많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가스통, 시한폭탄, 지뢰다.

엄마가 곁에 있었으면 그들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살인과 강간, 각종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그 손은 엄마가 가장 잘 말릴 수 있다. 완벽한 시설과 헌신적인 보육 선생님, 육아 경험이 월등한 할머니, 이런 것보다 아이에게는 엄마와 체온을 나누고 눈과 말로 소통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엄마의 체취와 사랑이 사람을 만들어간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바르게 살면서 엄마의 마음으로 세상을 이끌어 가야 한다. 정치든 행정이든 범죄 수사든 범인 교화든 모든 사회적 역할에서 남자도 엄마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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