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금융인 릴레이 인터뷰]서영경 한은 부총재보, 눈감고도 경제지표 줄줄이 ‘한국의 옐런’

입력 2015-05-20 10:21 수정 2015-06-1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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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금리인하 추세 무작정 따르기보다 가계부채 관리 우선”

▲서영경 한국은행 부총재보. 한은 63년 역사상 최초 여성 임원이다.(한국은행 제공)

지난 2013년 10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새 수장에 재닛 옐런 당시 부의장이 올랐다. 연준 역사상 첫 여성 의장이 탄생한 것이다. 또한 부의장에서 의장으로 내부 ‘승진’한 첫 사례였다.

같은 해 한국은행에서는 여성 부총재보가 처음으로 탄생했다. 서영경 부총재보가 그 주인공. 지난 1988년 한은에 입행한 지 25년 만이었다. 또한 1급 부서장으로 승진한 지 6개월 만이기도 해서 김중수 당시 한은 총재의 총애(?)를 받았다는 뜻에서 ‘김중수 키즈’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서영경 부총재보에겐 ‘박승 키즈’라는 수식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2002년 한은에 온 박승 전 총재가 동남아시아 중앙은행들을 방문하고 돌아 온 직후 직원들 앞에서 언성을 높였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한은에 여성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좀 더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자신도 한은에서 받았던 해외유학 지원 가능 연령을 확 높였다. 원래는 35세 정도였던 나이 제한이 완화되자 30대 후반이어서 내심 유학을 포기하고 있던 서 부총재보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굳은 결심 끝에 미국으로 떠난 서 부총재보는 4년 만에 초스피드로 박사 학위를 땄다.

“굉장히 감사한 기회였죠. 그런 지원이 없었다면 도전해보지 못했을 거였는데 전문성도 기르고 또한 적극성도 기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회란 그렇다. 올 때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서 부총재보는 중앙은행 경쟁력의 핵심이자 그렇기에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조사와 정책 분야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국제국과 통화정책국까지 두루 거쳐 기본을 쌓아둔 상태였다. 유학을 통해 그는 조사와 분석에 대한 전문성을 확실히 다질 수 있었고 “국제 회의를 가 보면 여성 중앙은행 총재, 부총재가 적지 않다”면서 여성 인재 양성을 강조한 김중수 전 총재의 파격 인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인터뷰를 하던 날은 5월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렸던 지난 15일이었다. 금통위에서 1명의 위원을 뺀 나머지 위원들은 금리 동결에 표를 던졌고 기준금리는 연 1.75%에서 유지됐다. 증시에선 ‘실망감’ 운운했지만 사실 금리 인하를 계속한다는 건 그만한 부담을 안는 부양책이다.

서 부총재보는 조사와 통계의 귀재답게 준비해 온 자료를 보지 않고도 경제지표를 줄줄이 거론하며 얘기에 나섰다. 물가 상승률이 낮아서 디플레이션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하지만 국제유가가 급격하게 하락했기 때문이고 기대 인플레이션은 최근 2.5%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할 것은 없다고 봤다. 이런 기대 인플레에는 공공요금 인상이나 집값 상승 등의 기대가 반영된 것이고 유가가 ‘적절한’ 선에서 상승한다면 우리 경제에는 오히려 디플레 우려를 없애는 긍정 요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풀어나간 이러한 설명에는 이의를 달 만한 것은 없다. 다만 한국은행이나 정부가 연초엔 너무 낙관적인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했다가 수시로 하향 조정하는 일종의 ‘습관’은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서 부총재보는 “사실 지난 수년간 전망치를 세웠다가 계속 하향 조정했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인구 고령화나 투자 부진, 생산성 저하 같은 구조적 요인이 중첩되었는데 이걸 초기에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었죠”라고 했다. 그리고 3.1%로 이제 3%대 초반까지 내려온 성장률 만큼은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기준금리를 더 내릴 수 있느냐는 민감한 질문에 대해선 매우 논리적으로 구체적 답변을 피해갔다. 일본도 중국도 금리인하나 양적완화에 나서고 있고, 미국도 아직 돈을 풀었던 수도꼭지를 완전히 잠그려하지 않는 상황이고 우리 경제 성장세도 미미한 것을 감안하면 한 번쯤은 더 금리를 인하할 필요가 있지 않느냔 얘기가 나온다.

서 부총재보는 “다른 나라가 그러니 단순히 동조화한다는 측면에서보다는 세계 경제 상황이 유사하게 움직이니까 결과적으로 통화 정책도 유사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다”라면서 “그러나 호주가 최근 기준금리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금리가 오르는 상황인데 우리도 금리를 조정했을 때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반응할 수도 있기 때문에 금리인하의 효과는 금리 변경 자체와는 조금 다를 수가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금리 내리고 돈 풀고 규제까지 풀어서 그렇잖아도 막대한 가계부채가 더 늘어났다가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폭탄을 맞을 우려가 있다. 서 부총재보는 “그래도 가계부채 문제가 단기간에 상환 불능으로 이어져 시스템 리스크를 불러올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계금융과 실물자산이 금융부채의 두 배, 여섯 배에 달하고 있기 때문에 상환 불능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 다만 가계부채가 계속 빠르게 늘고 여기에 금리까지 오르게 되면 가계의 부채 상환 부담이 커지면 거시 경제적으로 소비 위축 등이 악순환을 불러올 수는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서 부총재보는 힘을 주어 말하거나 눈을 마주쳐 상대방을 압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러나 자분자분 이어가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느껴지는 뚝심이 있다. 아닐 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정작 본인은 그냥 지내왔을 뿐이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25년의 한은 생활에서 굳은 살도 맷집도 모두 생겼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휘지 않는 화살은 결국 부러지기만 할 뿐이란 지혜도 얻었을 것이다.

“한은은 신사임당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화폐 가운데 가장 고액권이란 점에서 한은의 중요성을 말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담보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위기를 관리해 가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러려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같은 입장에서, 현명하게 판단하고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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