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펀치] 차라리 의원내각제를 하자!

입력 2015-01-2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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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23일 박근혜 대통령은 부분적인 청와대 개편을 단행하고 국무총리를 새롭게 지명했다. 이번 청와대 개편에서도, 청와대 공직기강 해이에 책임이 있다고 여겨지는 김기춘 비서실장은 유임됐고,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안봉근 비서관만이 자리를 옮겼을 뿐 나머지 두 비서관은 자리를 지켰다. 한마디로 국민적 여론과는 동떨어진 청와대 개편이라는 말이다.

물론 대통령은 총리를 바꾸면 여론의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지난 세월호 사건 때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 이번에 총리를 새롭게 지명했나 본데, 솔직히 총리 교체의 시기를 놓친 인사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모든 일은 시기가 있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이런 모습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행동 특징 중의 하나는 한 템포씩 느리다는 의미다. 즉, 총리 경질 요구가 높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비서실장과 이른바 3인방에 대한 경질 목소리가 높을 때 총리를 바꾸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일을 하고도 욕먹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모든 일은 국민적 요구가 높을 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또 문제가 있다. 바로 총리 지명자가 의원 출신이라는 점이다.

의원 출신 총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노무현 정권 시절의 이해찬 총리, 한명숙 총리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이완구 총리 지명자는 여당인 새누리당 원내대표 출신이고, 황우여 현 사회부총리는 새누리당 대표 출신이다. 그리고 최경환 현 경제부총리 역시 새누리당 원내대표 출신이다. 한마디로 행정부 최상층을 이루고 있는 인물이 모두 새누리당 대표나 원내대표 출신이다. 이것이 뭐가 문제냐고 말할 사람도 있다. 의원 출신들이 행정부의 최상층을 차지하고 있으면 당정 간의 소통도 원활해지고, 대야 관계와 국민 여론 수렴도 보다 민감하게 할 수 있어 장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행정부 최상위층이 이런 방식으로 꾸려지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근본적인 문제란 바로 대통령제의 근간인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견제와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현재 입법부에서 절대 과반 이상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정당은 새누리당이다. 그런데 이렇듯 입법부를 지배하고 있는 정당의 구성원이 총리와 부총리를 모두 차지하고 있으면 입법부과 행정부 사이에 ‘권력 융합’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통령제의 기본 원칙은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권력 분립, 그리고 이를 근간으로 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하에서는 ‘권력 분립’이 아니라 ‘권력 융합’이 일어남으로써 대통령제의 근본 취지를 해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제도 아니고 의원내각제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초래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점이 또 있다. 대통령제의 핵심은 입법, 사법, 행정 간의 권력 분립과 여기에서 파생되는 견제와 균형만이 아니라, 대통령의 임기제라는 점이다. 의원내각제의 경우 입법부의 다수당이 행정부를 꾸리게 돼 있어 권력 융합이 일어나지만, 의회 다수당의 수장인 총리의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아 언제든지 국민들이 정권을 갈아치울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임기 보장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 대통령제하에서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권력 융합이 일어나면, 보장된 임기를 근간으로 한 권력의 전횡이 발생할 수 있어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의 다수당 의원들이 행정부의 요직을 차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대통령은 인사청문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청문회 통과가 비교적 수월한 의원들을 총리나 장관에 기용하려 할 것이지만, 이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안정성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이다. 이번 청와대의 개편과 총리 임명이 개운치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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