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지금] 규제 강대국 유럽연합

입력 2020-02-2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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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팅 안쌤의유로톡 운영자0226

전공이 유럽과 국제정치경제여서 유럽의 연구소나 대학교, 언론으로부터 관련 뉴스레터를 자주 받아본다. 그런데 2018년 5월쯤에 이들로부터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다시 요청하는 이메일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저장하는 정보와 정보 처리 요령, 불만 제기와 같은 상세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바로 유럽연합(EU)이 개인정보 보호를 대폭 강화하는 일반정보보호규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GDPR)을 그해 5월 25일부터 시행했기 때문이다. EU 시민들 정보를 보유한 기업이나 연구소들은 모두 다 이 규정을 지켜야만 한다. 유럽에 진출한 국내 주요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흔히 ‘유럽’, EU를 볼 때 통상이나 무역에서는 그 존재감을 확연히 느낀다. 독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개별 EU 회원국이 아니라 경제정치 블록 EU가 비회원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해 현재 EU 회원국은 27개 국가이다. 6600만 명 정도의 인구를 지닌 영국이 나가서 EU의 경제 규모는 좀 축소됐다. 그러나 세계총생산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경제이다. 인구는 미국의 3억2900만 명보다 1억1600만 명이 더 많다(4억4500만 명). 경제뿐만 아니라 EU는 규제 강대국이다. 언뜻 이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글 첫머리에 예를 든 GDPR에서 볼 수 있듯이 EU가 여러 분야에서 규제를 만들면 이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은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거대 정보통신 기업인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GAFA)은 종종 EU에 거액의 벌금을 납부해야만 했다. 구글은 자사 기업에 유리한 검색 결과를 제공했거나 페북은 개인정보 보호를 소홀히 했다. 미국은 EU가 자국 기업만 차별한다고 비판하지만 유럽 대기업들도 자주 EU의 규제를 위반한다. 미국이 소비자 권리를 강조한다면 EU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디지털 시대의 인권을 강조한다. 행정부 역할을 수행하는 EU 집행위는 지난 19일 거대 정보통신 기업이 소유한 데이터 공유를 핵심으로 하는 디지털 전략을 발표했다.

EU가 우리에게 문제를 제기한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 미비준도 같은 맥락이다. 한·EU FTA에서 결사의 자유를 우리가 법제화하기로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아 EU가 이를 다룰 전문가 패널 설치를 요구했다. EU는 FTA에서도 노동자의 권리 보장, 환경 보호 등 관련 규범을 추가했다.

EU의 기후위기 대응도 규제 권력이 막강함을 보여준다. 지난 1월 발표한 ‘그린딜’에서 탄소국경세 방안이 나왔다.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준수하지 않는 국가의 상품이 EU로 수입될 경우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 기후위기 대응은 모든 국가의 협력이 필요하고 많은 비용이 든다. 이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 상품을 생산할 수 있기에 이 차액을 관세로 부과한다. 미국은 당장 이 세금이 시행되면 관세 부과로 맞대응하겠다고 밝혔다. EU는 앞으로 기후변화협약을 준수하지 않는 국가와 FTA도 체결하지 않을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를 발표하고 이를 진행 중인 미국과 아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2017년 1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후 미국의 연성권력(소프트파워)은 점점 약해진다. 아무리 군사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무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람들이 스스로 미국의 가치나 문화에 끌리는 게 소프트파워이다. 하지만 자유무역을 거부하고 이민자의 나라로 이루어진 정체성도 부인하며 이민을 규탄하는 미국 대통령을 볼 때 누가 미국을 매력의 나라로 여기겠는가? 더구나 올 11월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은 높다.

10년 후에 중국의 연성권력이 막강해질까? 중국은 세계 각국에 공자학당을 설립해 연성권력을 확산하려 했으나 이번 코로나19 사태 대응은 중국의 이런 노력을 상당히 깎아 먹었다. 늦장 대응과 은폐와 같은 여러 문제점이 지적됐다.

흔히 유럽을 비판할 때 ‘경제 거인, 정치 난장이, 군사 무지렁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막강한 경제와 통상, 단일 화폐, 규제의 힘을 일관된 정책으로 실행하는 게 쉽지 않다. 이게 EU의 어려움이다. 하지만 규제 강대국으로서 EU는 계속해 힘을 키울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정반대로 나가는 상황에서. 그래서 EU의 규제(규범)을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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