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성이 임원 되기 가장 힘든 나라 대한민국

입력 2020-01-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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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 원장, (사)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

새해 초부터 좋은 소식이 날아왔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전 세계 주요국 가운데 여성이 임원 되기 가장 어려운 나라였다. 그런데 이달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자산 2조 원 이상의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2년 이내에 최소 1인 이상의 여성 이사를 포함시키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애초에 이 법안은 자산 규모 2조 원 이상의 법인 이사회는 ‘특정 성이 2/3를 넘을 수 없다’라는 내용으로 상임위원회에 상정되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여성 등기이사 최소 1인 이상을 의무사항’으로 한 ‘여성 임원 할당제’가 본회의에서 통과된 것이다. 애초의 법안으로 통과되진 않았지만,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에게 도전과 희망을 준다는 의미에서 매우 환영할 만하다.

최소한 대한민국의 자본시장을 움직이는 자산 2조 원 이상의 대기업들도 따라야 하므로 더욱 효과적인 법이다. 이제 금융권 유리천장에도 큰 구멍이 날 계기가 마련되었으니 기쁘기 한이 없지만, 정부가 시행령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적용할지가 궁금하다.

‘여성 임원 할당제’란 기업 내 고위직에 여성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일정 비율을 충족하지 못할 때는 벌금을 부과하거나 정부 보조금 지원을 제한하는 등의 제도를 말한다. 민간기업에 ‘여성 할당제’를 가장 먼저 법제화한 것으로 유명한 나라는 노르웨이다. 노르웨이는 2003년 ‘유한책임 회사법’을 개정해 ‘여성 임원 할당제’를 도입하였다. 처음에는 국영기업이 대상이었으나 3년 후 민간기업까지 할당비율을 맞추게 했다. 할당비율을 맞추지 못하는 기업은 경고나 벌금에 이어 최종적으로 해산 또는 상장폐지가 가능한 초강력의 시행령을 도입하였다.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은 물론 아프리카의 르완다, 아시아의 말레이시아, 인도 등으로 ‘여성 임원 할당제’가 확산하였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도 상장회사가 ‘여성 임원 할당제’를 실시하지 않으면 벌금 및 처벌을 받는 규정까지 내놓았다.

이에 더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연합(EU)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금융감독그룹은 은행과 같이 신용을 창출하는 기업의 경영이사회가 충분한 성 다양성을 갖추지 못하면 ‘집단행동 위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성 다양성 구성이 매우 중요한 ‘감독 이슈’라고 지적했다. 상위 직급의 여성 희소성은 다양한 의견의 결여로 이어져 조직 전반에 큰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은행권의 몰락은 각국의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고, 다른 업종의 몰락에 비해 훨씬 느린 회복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왜 우리나라 금융권은 유독 여성 임원의 빈곤 현상이 심할까? 1980년대 은행의 공개채용 대상은 대졸 혹은 졸업예정인 군필 혹은 면제의 남성으로 특정되었다. 여성은 고졸 중심의 공개채용이었고, 대졸 여성은 매우 제한적으로 채용되었다. 군필 남성에게는 가산점(총점의 5%)까지 주어져 금융권의 취업 장벽은 여성에게 훨씬 높았다. 이 제도는 2001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됐지만, 오늘날 금융권 상위층에 여성 임원이 적은 주요 원인이 되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금융권 여성은 개인 영업업무를 담당하여 회사의 주요 경영정책이나 전략에 의견을 제시할 수 없는 부서에 자리하고 있다. 만년 과장으로 퇴직해야 하는 2차 정규직 대부분도 여성으로 채워져, 금융권은 성 평등 결여로 인해 여성이 임원으로 승진하기 가장 힘든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증권이나 보험 쪽은 은행보다 더욱 열악하다. 여성 고위직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직원이 많은 제1금융권에 맞춰져 있어, 은행은 그래도 여성 임원 배출이 나은 편이다.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통과가 남성 중심 문화가 굳어진 우리 금융계에서는 남성들에게 부정적이거나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조직 상층부의 성 평등은 금융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시대적 요구이다. 우리나라는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고, 그중 매우 우수한 여성들이 금융권에 진입하고 있다. 2017년 ‘여성금융인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한 라가르드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기조연설에서 “한국 여성들은 국내외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었으나 수많은 장애물과 편견에 가로막혀 제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여성을 키워야 조직이 큰다’는 패러다임은 이제 전 세계, 전 산업에서 확산하고 있다. 남성, 여성 모두가 화합하여 평등의식을 갖고 함께 갈 때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경쟁력과 신뢰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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