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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입력 2019-09-11 05:00

편집부 교열팀장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 푸른 풋콩 말아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어 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어 웃고/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미당 서정주의 시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이다. 달, 식구, 송편, 풋콩, 올빼미 등 둥글둥글한 단어들이 방긋 웃게 한다. 마음 급한 우리 엄마는 오늘 밤 아들, 며느리, 손주들을 앉혀 놓고 송편을 빚을 게다. 어디 풋콩뿐이겠는가. 밤, 깨, 팥으로도 소를 만들어 광주리 가득가득 빚을 것이다. 거실에 둥근 밥상을 펴 놓고 빙 둘러 앉아 깔깔 호호 웃는 식구들 모습만 생각해도 정겹기 그지없다.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은 아버지 꿈을 꿨다. 나는 열 살, 아버지는 젊고 건장한 40대의 모습이다. 송편 찔 때 넣을 깨끗하고 여린 소나무 잎을 따러 산길을 걷고 있다. 다리가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니 아버지께서 대추만 한 산다래를 따서 주머니 한가득 넣어 주셨다. 꿈인데도 새콤달콤한 산다래 맛이 느껴져 지금껏 기분이 참 좋다.

어릴 적 그날, 해 질 녘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솔잎을 깨끗이 씻어 시루에 켜켜이 넣고 송편을 쪘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솥에서 새어 나온 소나무 향이 마당 가득 퍼지면 옆집, 뒷집, 앞집 아주머니들이 건너 오셨다. 울도 담도 대문도 없던 시절, 그날만큼은 동네 친구들과 밤늦도록 뛰어 놀 수 있었다. 갓 쪄낸 송편에는 솔잎이 찍혀 가을을 먹는 느낌이다. 별도 달도 이마에 닿을 만큼 가까이에서 빛나던 그날의 그 향기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게다.

송편은 이름이 여러 개이다. 송병·송엽병이라고도 하는데 솔잎에 떡을 찌는 데서 유래했다. 소나무 송(松) 혹은 솔잎을 뜻하는 송엽(松葉)에 떡 병(餠)을 붙인 말로, 떡 사이에 솔잎을 깔고 찐다는 의미이다. 송편의 원래 이름인 ‘오려송편’은 햅쌀로 만든 송편을 말한다. ‘오려’는 제철보다 일찍 여무는 벼인 올벼의 옛말이다. 송편에 햅쌀향과 솔잎향이 함께 흐르는 이유이다.

명절 인사 문자메시지를 여러 통 받았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지인들과도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훈훈하다. 그런데 추석 등 명절을 지내는 것은 ‘쇠다, 쇄다, 세다, 새다, 쉬다’ 중 어느 것이 바른 표현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쇠다’가 맞는 말이다.

‘쇠다’는 명절뿐만 아니라 생일, 기념일 같은 날을 맞이하여 지낸다는 뜻이다. 그러니 추석 인사는 “한가위 잘 쇠세요”, “명절 잘 쇠고 봅시다”처럼 하면 된다. 대보름, 단오, 동짓날, 환갑 등을 맞아 지낼 때에도 ‘쇠다’라고 표현하면 된다. “나는 음력으로 생일을 쇤다”, “덕분에 부모님의 금혼식을 잘 쇠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가위인 모레는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른단다. 밝고 고운 만월(滿月)을 볼 수 있다니 벌써부터 넉넉하고 푸근해진다. 달이 떠오르면 옛사람들처럼 식구들과 손을 잡고 복을 빌 생각이다. 세대 차이로, 생각 차이로 서로 찔러대던 가시 돋친 말들도 보름달 아래에선 둥글둥글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독자 여러분, 한가위 잘 쇠십시오.

jsjy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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