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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회생 보고서] 첫 여성전문병원…새 둥지 틀고 옛 명성 되찾을까

⑲삼성家 지원으로 문 연 제일병원…과도한 투자 독 됐나

삼성家가 태어난 곳이자, 국내 첫 여성 전문병원으로 명성을 크게 얻던 제일병원. 한때는 ‘삼성제일병원’으로 불리며 서울 한복판에서 병원으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했다. 하지만 저출생 여파와 무리한 증·개축 추진으로 경영난이 왔고, 결국 청산과 회생의 갈림길에 섰다. 회생을 위한 유일한 대안인 ‘부지 매각’이 성사되면 청산과 회생의 여부와 관계없이 제일병원은 지금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제일병원은 현재 정상화를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2019년 1월. 배우 이영애 씨가 ‘제일병원’ 인수 컨소시엄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최근 몇 년 새 경영난을 겪은 제일병원이 폐원 위기를 맞았다는 이유에서다. 이 병원에서 자녀를 출산하고 평소에도 제일병원을 자주 방문한 이 씨가 병원을 살리기 위해 인수자로 참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회생의 불빛이 살아나는 듯했다.

◇ ‘국내 첫’ 타이틀 달고 나온 제일병원 = 1963년 12월, 서울 중구 묵정동 일대에 제일병원의 간판이 올라갔다. 이때 제일병원은 사단법인 서울부인암센터를 동시에 병설한다. 여성전문병원이 처음 등장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이전까지 여성만 전문으로 하는 곳은 암센터는 고사하고 병원조차 없었다. 시장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제일병원은 개원과 동시에 큰 인기를 끌었다.

제일병원은 ‘삼성’가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다. 제일병원 창립자이자 초대 이사장인 이동희 박사는 부친이 이병철 삼성그룹 초대회장의 형인 이병각 씨다. 이병각 씨는 롯데제과의 전신인 일동산업의 사장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인 제일제당의 소유지였던 묵정동 부지를 이동희 씨에게 싼값에 넘기는 등의 편의를 봐줘 병원건립이 수월하게 진행됐다.

삼성의 도움을 받았던 탓일까. 제일병원은 도중에 삼성그룹으로 소유권이 넘어간다. 1996년 3월 이동희 이사장이 급작스레 폐암 진단을 받으면서, 이 이사장은 사망 직전 유언장을 통해 제일병원을 경영권을 삼성그룹에 이양하기로 결정한다. 이후 제일병원은 삼성의료원에 편입돼 2005년까지 ‘삼성제일병원’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 투자로 의학 발전엔 큰 공, 동시에 어려움도 = 제일병원은 국내여성 의학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병원이다. 연구에 필요한 투자도 아낌없이 진행했기에 가능했다. 제일병원은 국내 첫 자궁암 조기진단센터를 열고 1974년에는 산부인과 초음파진단법을 도입했다. 2009년에는 국내 최초로 여성암센터를 설립했으며 제일의학연구소를 중심으로 기초의학과 임상연구에 대한 투자도 진행했다.

그러나 빛과 함께 그림자도 짙게 드리웠다. 제일병원이 경영난을 겪던 시기 노조는 병원이 경영진의 무리한 투자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2007년부터 병원 증축을 위해 2015년까지 1000억 원대 담보 대출을 받았다. 이때 병원 토지와 건물이 공동담보로 잡히고 부채비율도 대폭 늘었다.

무리하게 새 주차타워를 오픈하면서 노사 간의 갈등도 크게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이재곤 이사장은 횡령 등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특히 급격하게 하락하는 출생률은 제일병원의 경영을 더욱 어렵게 했다.

결국 제일병원은 올해 1월 서울회생법원에 법인 회생절차를 신청한다. 제일병원은 법원이 회생절차를 개시하기 전에 자율구조조정지원(ARS)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보통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청산가치와 존속가치를 비교하는 작업이 우선된다. 부채 비율이 상당했던 제일병원으로서는 초기에 인수자를 찾지 않으면 폐업 가능성이 클 것이란 판단이 작용했다.

ARS프로그램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채권이 동결되고 회사의 자산매각도 금지된다. 이후 3개월간 채권자들과 채권조정 협의와 동시에 인수 희망자와 매각협상도 할 수 있다.

◇ 인수자 못찾고 부지 매각으로 회생 결정 = ARS 프로그램은 실패하고 이영애 컨소시엄도 인수자금 이견 차이로 물거품이 된다. 회생법원은 스토킹 호스 방식의 매각 방식을 결정하고 채권단 동의를 거쳐 우선매수권자를 파빌리온자산운용으로 선정한다.

제일의료재단은 제일병원 여성암센터 등 9개 건물과 토지를 일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부동산 인수 후 파빌리온자산운용은 제일병원 용지와 건물을 대상으로 부동산 개발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제일의료재단도 3년 내로 다른 지역에 병원을 새롭게 설립·이전할 방침이다. 그 사이에는 분원을 통해 영업할 계획이다.

매각은 이사회 구성권을 넘기는 방식이다. 국내 의료법인은 외부 투자를 받을 수 없도록 의료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제일병원 관계자는 “회생계획안은 완성됐고 제출만 남아있다. 8월 말 중으로 제출하겠지만 아직 인수자는 정확하게 특정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회생계획안이 제출되면 당장 급한 채무는 변제가 가능해지지만, 병원의 존립은 두고 봐야 한다. 부동산이 매각되면 병원은 이전할 지역을 찾아야 한다. 이전하기 위해선 지역 관할 보건소 허가도 필요한데, 쉽지 않은 작업이다. 만약 이전 지역을 확정하지 못하면 제일병원의 존립도 사실상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여러 관계자가 부지 매각을 반대했지만 제일병원으로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최근 제일병원은 진료에 차질을 빚은 것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하고 정상화 작업을 시작했다. 제일병원은 공고문을 통해 “그간의 여러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하려고 한다. 부분 진료를 시행하던 외래진료를 순차적으로 가동한다”며 “병원 정상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저러한 논란은 있었지만 여전히 제일병원 내부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위기를 딛고 다시 제일병원이 과거의 영광을 찾아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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