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첫 희생자 조양호 회장…"연금사회주의 우려"

입력 2019-03-27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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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관치 세질라" vs 정부 "주주권 세진 것"

사상 최초로 재계 총수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로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는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재계는 이를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민간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연금사회주의’로 가는 물꼬를 튼 것으로 판단하며 불안해 하고 있다.

연금사회주의의 신호탄이라는 우려와 주주권의 승리라는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27일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며, 대표이사직을 상실했다. 연임에 성공하기 까지 2%가 조금 넘는 찬성표가 모자랐다.

이날 주총에서는 위임장 제출을 포함해 5789명이 의결권을 행사했다. 총 7004만 946주로 의결권 총수의 73.84%다.

대한항공 정관에 따르면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 조 회장이 연임하기 위해서는 찬성표 66.66% 이상이 필요했지만 64.1%에 그쳐 2.5%가량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11.56%의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반대 여파가 컸다.

전날 국민연금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열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 침해 이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이유로 조 회장 연임안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외국인, 기관, 소액주주의 의사 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반면 같은 날 진행된 SK㈜ 주주총회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내이사 연임에 성공했다. 국민연금의 보유 지분(8.4%)이 많지 않아 그만큼의 영향력 행사를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가 연금사회주의를 우려하는 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가 정부와 시민단체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국민연금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한 조치는 아직까지 진전된 바 없다.

또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 역할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어 정권의 성향에 따라 얼마든지 기업경영이 국민연금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다.

세계 최대 연금인 일본 GPIF는 독립행정법인으로 정부와 분리돼 있으며, 미국과 영국 등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자율적’ 규범으로 규정짓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은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있는 만큼 보다 (반대판단에)신중했어야 하는데 아쉽다”며 조양호 대한항공 사내이사 재선임안 부결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국민연금은 이미 약 300개 기업의 지분 5%이상 보유하고 있으며 10% 이상 보유기업도 80여개에 달한다.

이들 기업 역시 국민연금의 경영개입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체 상장사의 일곱 곳 중 한 곳(14%)이 해당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처럼 630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수준의 자산을 주무르며, 자국 대기업 지분을 10% 안팎으로 대거 보유하고 있는 나라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야말로 독보적인 존재다.

이 같은 이유로 업계 전문가들은 수탁자책임 전문위를 국민연금 외부에 별도로 신설하고, 기금운용본부장을 국민연금 이사장과 인사적으로 분리해 선임 시 국회 동의를 얻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물론 한켠에서는 대한항공 주총 결과를 보고 주주의 권한이 강해졌다며 반기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주 행동주의에 한층 더 힘이 실릴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주주 행동주의는 주주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활동이다. 선진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재벌 총수 등 대주주의 지배력이 절대적이어서 그동안 현실화 되지는 못했다.

최근에서야 국내에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가 도입되면서 주주권한 강화에 대한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들이 자금 수탁자로서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고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유도하는 자율지침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날 조양호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안 부결과 관련해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 원칙) 도입의 긍정적인 면을 잘 보줬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됐음에도 주주들이 대주주와의 표대결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었다”면서 “하지만 이번 주총 결과는 향후 주주 행동주의에 보다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의 우려는 당장 주주권의 승리를 덮을 만큼 심각하고 깊다. 지난해 4월말 기준 630조 원을 넘는 국민연금의 국내주식투자 비중은 21.2%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주요 대기업 계열사에 대한 국민연금 지분은 10%에 육박하고 있다.

포스코와 KT&G 등 이미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에 오른 상장사들도 적지 않다. 과거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특정한 주인이 없는 기업의 경우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재계의 걱정은 국민연금 규모가 날로 커지면서 대한항공처럼 수년내에 상당수 대기업의 2대주주로 국민연금이 부상할 수 있다는 점에 근거한다. 국민연금 규모는 향후 5년내 10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이는 등 향후 지속적으로 국내증시 영향력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국민연금 운용자금 규모가 세계 3위로 글로벌 큰손으로 평가받지만 투자수익률의 경우 해외선진국 연기금보다 2~3%포인트 낮은 상황”이라며 “기금운용의 정치적 독립을 담보하지 않으면 수익률보다는 정권 입맛 맞추기에 국민노후자금이 휘둘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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