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적폐청산’ 좀 청산하라

입력 2018-09-0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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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른바 ‘당정청 전원회의’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적폐청산이었다. 문 대통령은 당정청이 함께 이뤄내야 할 시대적 소명에 대해 “강력하고 지속적인 적폐청산으로 불의의 시대를 밀어내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1년여가 지나 2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시점에 국정 운영의 최우선 목표로 적폐청산을 다시 외친 것이다.

경제나 남북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문 대통령이 힘들여 강조한 것은 적폐청산이었다. 회의 참석자들이 모두 ‘우리 사람’, ‘내 편’이기 때문에 연설이 더 그런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다.

하지만 적폐청산은 이제 시대의 화두나 소명으로 더 이상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적폐청산 때문에 엉뚱한 피해를 보거나 염증과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그만 이야기하면 좋겠다. 그 회의를 지배한 것은 집단사고라고 생각된다. 집단 사고는 반대 의견을 억압해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게 한다. 집단사고에 빠지면 구성원들은 상황 적응능력이 떨어지게 되는데, 문재인 정부도 지금 그렇게 돼가고 있는 건 아닌가.

적폐청산이란 과거의 일과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고 척결함으로써 새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다. 스스로 공정하고 항상 정의롭지 않으면 ‘우리는 정의, 상대는 적폐’라는 자폐적 이분법 정치를 하게 된다. 지지기반 중심의 편향된 정책·정국 운영은 배제된 사람들의 반감과 거부반응을 키울 뿐이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비호감 정치인이지만 그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내신성적을 잘 받으려면 경제 과목을 잘해야 하는데 할 줄 아는 게 완장 차고 돌아다니면서 청소 상태가 불량하다고 윽박지르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할 줄 아는 게 적폐청산밖에 없느냐는 것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통계청장 경질, 코드 낙하산 인사 이런 걸 보면 문재인 정부가 전 정부와 뭐가 다른지 의심하게 된다. 7월 말 기준 이 정부 들어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장 203명 중 91명(45%)이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보도가 있었다. 특히 상임감사는 49명 중 82%인 40명이 캠코더였다.

적폐청산과 부패 척결에 맞는 말은 격탁양청(激濁揚淸), 탁류를 몰아내고 맑은 물을 끌어들인다는 성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탁류를 몰아내기 위해 바닥을 치고 헤집어 물을 더욱 흐리게 하는 것 같다. 탁류를 없애려면 바닥을 까뒤집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부에서 맑은 물을 끌어들임으로써 그 힘에 의해 물이 전체적으로 맑아지고 탁류는 밖으로 밀려나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계속 적폐청산에 매달리고 얽매여서는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기 어렵다. 적폐청산을 하더라도 조용히 공정하게 하면 되지 떠들고 외쳐서 가뜩이나 살기 힘든 국민들의 염증과 피로감을 키울 필요가 없다. 문 대통령은 영국의 자동차산업 발전을 막았던 규제와 구태의 상징 ‘붉은 깃발’을 없애자고 하지만, 국민 중 상당수는 당정청에 점점 짙어지는 것으로 보이는 좌익의 붉은 깃발을 걱정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달라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 2기에 접어들었으니 이쯤에서 대선공약 전체를 재점검해 파기할 것, 폐기할 것을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이미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이라는 공약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런 사과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나라를 잘 이끌고 국민과 소통하기 위한 현실적 조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광화문 청와대’처럼 작은 공약으로 보이는 것들도 지킬 수 없거나 필요가 없으면 솔직하게 밝히고 버리면 된다. 대선 때야 무슨 말을 못하겠나. 그런 공약을 지키려고 무리와 억지를 거듭하지 않는 것, 이런 게 나라와 국민을 위한 실질적 적폐청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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