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직격탄] 나문희처럼, 패티 김처럼

입력 2017-09-0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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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무더위가 사라졌다. 매미 울음도 멈췄다. 가을 초입이다. 여름에서 가을로의 환절(換節)은 지난 삶을 잘 살았는지,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살 것인지 성찰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올가을은 더 그렇다. 권력과 자본의 정점에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재판정에 선 모습을 생생하게 목도(目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갖 갑질을 하며 탐욕적인 삶을 사는 기업가, 물러날 때를 알지 못하고 노욕을 드러내는 정치인, 양심과 진실보다는 권력과 돈을 좇는 법조인, 학문은 뒷전이고 출세하기 위한 정치에 몰두하는 교수, 비판 정신은 마비된 채 이익을 위해 국민을 속이는 언론인의 추한 민낯을 계속해서 목격하고 있다.

시인들이 자주 노래하는 사색과 내면의 계절, 가을이라는 상황과 정치인, 기업가, 전문가의 몰락이라는 사회적 이슈가 촉발한 삶의 성찰 과정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가 중견 배우 나문희와 은퇴 가수 패티 김이다.

추석에 개봉 예정인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여자 주연은 76세의 나문희다. 식사 장면에만 나오는 ‘식탁용 배우’로 인식되는 일반적인 70대 여배우의 모습과 정반대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가 주연을 맡은 것은 인기와 연륜, 명성 때문이라고. 정말 그럴까.

1961년 라디오 성우로 출발해 56년 경력을 지닌 연기자로서의 나문희의 삶은 치열함 그 자체다. 나문희는 경력과 성공, 돈에 집착하는 배우가 아닌 연기를 사랑하며 드라마와 영화, 무대에서 소생(甦生)하는 배우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대중이 눈길조차 주지 않는 행인 등 이름 없는 배역과 주연을 빛나게 하는 조연 캐릭터에 온 힘을 쏟았다.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는 일념으로 주어진 캐릭터의 비중과 상관없이 연기에 전부를 걸었다.

대중은 나문희를 ‘우리 시대 최고의 배우’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그는 수식어의 허명(虛名)에 갇히지 않는다. 배우는 작품마다 평가받는다. 인기와 명성은 결코 배우 연기력의 보증수표가 되지 못한다. 나문희는 연륜과 명성, 인기보다는 너덜너덜해진 극본과 땀을 더 믿는다. 56년 연기 경력의 최고 연기자, 나문희는 여전히 듣고 싶은 찬사가 “연기가 늘었다”라는 말이란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정직한 땀으로 극본을 적신다.

오늘의 삶은 지난 시간 어떻게 살아왔는지의 결과물이다. 젊은 날부터 치열하게 연기했기에 오늘의 나문희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인기와 연륜, 명성, 수입에 안주하지 않고 현재진행형의 노력을 하기에 76세에도 주연을 맡는 나문희가 가능한 것이다.

삶을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를 잘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하와이의 노을을 바라보는 데 정말 화려하고 아름답고 황홀했다. 서서히 햇빛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저 노을처럼 모두의 기억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자고 결심했다. 전성기와 똑같이 내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 떠나자고 마음먹었다.” 최고의 가수로 한 시대를 수놓은 패티 김이 2013년 10월 26일 55년의 가수 인생에 마침표를 찍은 무대에서 한 말이다.

수많은 대중은 패티 김이 무대에 계속 서길 원했지만, 그는 물리적 나이로 초래되는 성대 문제 등으로 최고의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며 미련 없이 무대를 떠났다. 권력과 돈에 대한 탐욕을 떨치지 못해 추한 모습으로 인생을 퇴장하는 사람들과 달리 가수 생활을 담백하게 갈무리하며 무대를 떠난 패티 김의 뒷모습이 참 아름답다. “박수 보낼 때 떠나고 싶다”라는 평소 바람을 실천한 패티 김은 대중의 가슴에 최고의 가수로 남아 있다.

선선한 기운이 감돌고 귀뚜라미 소리도 들리는 초가을이다. 인생을 나문희처럼 살다가 패티 김처럼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TV 화면 속 수갑 찬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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