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난세영웅의 후예를 기다린다

입력 2017-03-03 10:53 수정 2017-03-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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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영웅’이라고 한다. 그 영웅은 지금 우리 사회가 만나고 싶은 구원 투수일 것이다. 2017년, 봄을 문턱에 둔 대한민국은 여전히 추운 난세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더 간절히 봄의 전령 같은 영웅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그 영웅은 광야를 달리는 초인일까? 신기루일까? 하지만 지나고 보면 난세영웅들은 가까운 곳에서 세상의 물길을 바꿔왔다.

역사적으로 난세영웅들의 공통점은 영합과 타협을 모르는 DNA를 지녔다는 것과 앞뒤 계산 없이 신념의 지령을 따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선이 미래를 향했다는 것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의 급성장에도 그런 영웅들이 있었다.

1995년 한국 뮤지컬은 격동기였다. 해적판 라이선스 뮤지컬이 난무하는 와중에 대중성이 강한 창작 뮤지컬이 간간이 나타나는 시기였는데, 모두 연극 극단 작업들이라 뮤지컬이라기보다는 음악이 강한 연극의 모양새였다. 그런데 그해에 국내 최초로 프로듀서가 작품의 콘셉트와 소재를 정하고 작가와 작곡가와 연출가를 선정해 협업하도록 한 창작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가 제작됐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뮤지컬 문법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창작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그 시도는 당연히 기존 풍토와 기존 의식을 설득해야 하는 개척적인 도전이었다. 그래서 그 작업을 이뤄낸 설도윤·김용현 뮤지컬 프로듀서를 한국의 1세대 전문 뮤지컬 프로듀서라 일컫는다. 그리고 ‘사랑은 비를 타고’는 최장수 창작 뮤지컬이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잇게 된다.

같은 해 또 한 편의 장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주목받는데 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의 영웅이었던 ‘김민기 표’ 독창적 창작 뮤지컬의 탄생이었다. 독일 뮤지컬을 한국 상황으로 번안하고 편곡한 이 뮤지컬은 수많은 스타(조승우, 황정민, 설경구, 김윤석 등)를 배출한 전용 공연장까지 기존 공연 문법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이 또한 한 사람의 신념과 일관된 열정의 산물이었다. 그 결과 ‘지하철 1호선’도 1994년 초연부터 2008년까지 15년간 롱런하면서 한국 뮤지컬 역사에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같은 해에 또 윤호진 프로듀서 겸 연출자가 한국 뮤지컬 시장의 물길을 바꾼다. ‘에이콤인터내셔널’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의 뮤지컬 제작 전문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5년간의 뚝심으로 기존 시장 풍토와 방식을 완전히 뒤엎고 당시 제작비 12억 원의 송스루(Song Through, 대사 없이 노래로만 구성) 대작 창작뮤지컬 ‘명성황후’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문열의 소설 ‘여우사냥’을 김광림 극작가가 극본으로 각색하고 이후 양인자, 김희갑 커플이 협업해 노래 가사로 완성하는 몇 단계 전문적인 과정을 거친 텍스트도 매우 획기적이었고 국내 최초의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의 탄생도 윤호진 연출가의 선구적인 기획력의 결과였다. 마케팅 전문가에 의한 체계적인 홍보 마케팅 시도, 한국 창작 뮤지컬 최초의 뉴욕 진출, 그리고 20년 최장수 뮤지컬의 기록까지 ‘명성황후’가 한국 뮤지컬에 끼친 개척적인 영향은 상당하다.

그리고 2년 뒤, IMF가 한국을 강타한 1997년에 영웅적인 작품을 만든 영웅이 또 나타난다. 올해 20주년을 맞는 ‘난타’의 송승환 프로듀서는 공연에서의 전문 마케팅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하고 탈(脫)연극, 탈대학로, 탈전통성 방식으로 세계 보편적인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로 세계를 난타했다.

여기에 기존 방식을 극복하고 새로운 물살을 가른 또 한 명의 모험가가 큰일을 해낸다. 100억 원에 이르는 제작비에 LG아트센터 8개월 장기 공연, 18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오페라의 유령’ 한국 라이선스 공연이다. 이 공연을 기적처럼 성사시킨 설도윤 프로듀서는 당시로서는 존재하지 않는 장기 공연장과 투자자를 만들어냈고 한국에서도 뮤지컬을 하느냐고 묻던 원작자 앤드루 로이드 웨버를 미친 듯이 설득해 결국 한국 뮤지컬 시장을 일취월장시키는 신기록들을 남겼다.

1세대 뮤지컬 프로듀서들은 꿈을 신념으로 실천한 도전으로 지금의 한국 뮤지컬을 가능하게 한 난세영웅들이다. 그때도 난세였고 지금도 난세다. 그들의 후예가 기다려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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