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다시 반기문을 생각하는 이유

입력 2017-02-0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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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청와대 정책실장

실로 오랜만에 마주 앉은 자리, 그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과 잘할 수 없는 일을 이야기했다. 세계를 돌며 흥하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를 봐 왔다며 우리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협치가 왜 중요한지를 말했다.

옳고 바른 이야기였다. 공감이 갔다. 하지만 곧 걱정이 들었다. 귀국과 함께 시작된 비난과 음해에 너무 큰 상처를 받은 것 같아서였다. “너무 험하다”는 그의 말에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언어폭력과 음해는 기본이다.”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으로, 또 고향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공범으로 엮인다.”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더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민망했다.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을 하고 돌아온 그에게 기껏 하는 말이 이런 말이라니. 그가 떠나 있던 10년 동안, 나는 이 못난 정치를 고치고자 무엇을 했단 말인가.

어디 나만 그랬겠나.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결국 그는 꿈을 접었다.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뉴스로 정치교체의 명분은 실종되고,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됨으로써….” 출마를 포기하며 그가 한 말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기백과 배짱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 무슨 대통령을 하느냐”고. 맞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음해와 공작, 그리고 폭력적 댓글과 언어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이게 기백과 배짱의 문제일까? 이를테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장수도 이런 폭력은 견디지 못한다. 전장에서는 죽어서도 이름이나 명예가 남을 수 있지만, ‘인격 살해’의 판에서는 이겨도 져도 오명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은 빠질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라. 유럽의 나라 등 우리가 칭찬해 마지않은 나라의 정치인들이 이 땅에 와서 단 며칠을 버틸 수 있겠나? 맥아더 장군인들, 오바마 전 대통령인들 몇 주를 버티겠는가? 차라리 반기문 전 총장은 그들이 버틸 수 있는 이상을 버텼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출마 포기는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던졌다. 그가 느낀 ‘벽’과 ‘한계’ 모두가 우리 정치의 문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꿈을 접는 그 순간에도 우리 사회는 이런 문제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에 대한 비하가 판을 쳤고, 언론조차 그의 출마 포기가 누구에게 유리한지에 대해서만 열을 올렸다.

‘인격 살해’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아하! 우리가 세상을 주도하는구나.” 더 큰 자신감에 우리의 정치를 더 험하게 만들 것이다. 명예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뒤로 가고, 잃을 것이 없는 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의 정치(negative politics)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힘든 세상에 너도나도 가슴에 비수를 품는다. 이를 놓칠세라 일부 정치세력은 이들의 분노를 자극하며 그 비수를 꺼내게 한다. 그리고 상대를 찌르게 만든다. “저들이 원흉이다. 저들을 죽여라. 저들이 죽으면 네 모든 고통이 사라지리라.”

온갖 음해와 불명예를 감수해야 하는 정치가 얼마나 생산적일 수 있겠나? 그런 정치에서 얼마나 바람직한 지도자가 나오겠으며, 그들 중 누가 이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결국 너도나도, 그리고 나라도 멍이 들 수밖에 없다.

온 나라가 하나가 되어 유엔 사무총장으로 추천한 인물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민적 영웅이었고, 대통령 후보로도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귀국한 지 채 몇 주 지나지도 않아 우리는 그를 ‘인격 살해’했다. 온 세계가 잘 아는 인물이다. 그 세계가 우리 정치의 이런 민낯을 어떻게 볼까 걱정이다.

그를 정치의 장에 불러낸 것도 우리이고, 그를 ‘인격 살해’한 것도 우리다. 당연히 그의 아픔은 우리 모두의 아픔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아픔은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와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한 우리 정치의 미래는 없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다시 그를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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