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광고로 보는 경제] 대기업의 꿈

“자네는 죽기 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

‘......못 먹은 밥이 생각나는 군요….’ <‘이말년씨리즈’ 중>

인간만 꿈을 꾸는 것이 아니다. 기업도 꿈을 꾼다.

근데 사람들의 꿈과 마찬가지로 꿈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두꺼비를 잘보면 가장 앞의 흰 두꺼비는 '로봇'이다. 미래를 꿈꾸는 진로 그룹의 의지가 엿보인다.
▲두꺼비를 잘보면 가장 앞의 흰 두꺼비는 '로봇'이다. 미래를 꿈꾸는 진로 그룹의 의지가 엿보인다.

◇진로그룹…사업다각화의 꿈

아시다시피 소주는 지역별로 판매하는 상품이 다르다. 요즘은 서울에서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하면 “참이슬, 처음처럼 중에 뭐 드릴까요”라는 답변이 곧잘 돌아온다.(‘빨간 뚜껑’은 잘 안 먹으니까).

하지만 옛날엔 수도권에서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 하면 묻지 않고 ‘진로’ 소주가 나왔다. 지금 같은 초록색 소주가 아니라, 약간 투명한 에메랄드빛이 감도는 색의 오프너로 따는 뚜껑의 소주. 소주가 어떻게 생긴지는 크게 중요한게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인구가 가장 몰려 있는 수도권에서 ‘소주 주세요’하면 ‘진로’가 나올 만큼 압도적인 소주 판매량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이처럼 주류산업으로 축적한 탄탄한 자금력이 있었던 진로는 사업다각화를 꾀한다. 사진 속 광고는 1994년에 게재된 것으로, 진로의 폭발적인 사업확장이 절정에 달했을 시기다.

기간산업, 금융, 건설, 하이테크, 유통, 레포츠, 식음료, 문화복지…. 하단에는 진로그룹에서 경영하던 수많은 계열사들이 보인다. 진로의 본업과 관련없는 계열사만 훑어보면 △진로 백화점 △진로건설 △연합전선 △진로제약 △우신상호신용금고 △우신투자자문 △진로인터내셔널 △진로문화재단 등이 있다. 한때는 편의점 ‘세븐일레븐’도 인수하려던 흔적도 있다. 참 많은 분야에 투자했다.

내수 산업 기반 재벌그룹, 가장 비슷한 모델로 현존 롯데그룹과 유사한 형태의 대기업 그룹을 꿈꿨던 것으로 보인다.

▲이중에 이런 정도의 사업 다각화 노력 없이 성공한 그룹은 없다. 다만 진로와는 방법론의 차이가 있었으니...
▲이중에 이런 정도의 사업 다각화 노력 없이 성공한 그룹은 없다. 다만 진로와는 방법론의 차이가 있었으니...

소주만 전문으로 팔던 경공업 회사가 그렇게 대기업 그룹집단으로 도약한다는 것이 별로 어울리지 않고, 어쩌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근데 그렇지도 않은 것이 지금은 통신과 석유화학이 주력인 SK도 옛날엔 선경직물로 시작한 방직회사였고, 거대 문화 산업 그룹이 된 CJ설탕을 만들어 팔던 회사였다. 아예 진로와 똑같이 주류 산업으로 시작해 국내 굴지의 중공업그룹으로 거듭난 두산 같은 사례도 있다.

이 정도 모험도 하지 않고 대기업 그룹으로 도약한 그룹은 국내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딱히 진로그룹이라고 안 될 거라고 볼 근거는 없었다.

▲꿈을 꾼 자에게 닥친 가혹한 운명. (출처=MBC뉴스데스크 캡처)
▲꿈을 꾼 자에게 닥친 가혹한 운명. (출처=MBC뉴스데스크 캡처)

근데 방법론적인 문제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어떤 기업이 대기업 그룹으로 도약할 때는 ‘축차적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변화를 보여왔다. 두산은 주류 산업에서 건설중장비 산업으로, CJ의 경우 식료품 산업에서 영화산업으로, SK는 방직업에서 석유화학 산업, 그리고 다시 통신산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갔다. 대부분의 대기업집단은 기존의 주력 산업을 새 산업으로 차례로 옮겨가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들과 달리 진로는 주력으로 보유한 주류 산업 외에 뚜렷이 새로운 주력 산업이라고 할 만한 곳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게 아니라, 이 산업, 저 산업 손대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시간이 좀 더 여유 있었다면, 진로도 새로운 주력 산업을 찾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전쟁터와 다름없는 재계는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고 3년 뒤엔 외환위기가 왔다. 애초부터 무리한 사업 확장을 하고 있던 진로는 거의 외환위기 시작과 동시에 부도를 맞는다.

위 광고에서 진로그룹의 꿈을 대신 꾸고 있는 듯한 두꺼비의 눈이 초롱초롱한게, 뭔가 더욱 슬프고 안타까운 느낌이 들게 한다.

▲그게 LG가 된다 이말이지.
▲그게 LG가 된다 이말이지.

◇LG…세계 최고가 되고 싶었는데

10년 후에는 최고의 기업이 될 거라며 ‘도약 2005’라고 써 있는 데서 유추가 되듯 1995년 광고다. 창립 50주년을 맞아 게재한 광고라고 한다.

위의 진로그룹 광고를 봐도 그렇지만, 이때 이런 광고가 정말 많았다. ‘도약’, ‘일류’, ‘세계’, ‘최고’.... 대한민국의 ‘벨 에포크’(Belle Époqueㆍ아름다운 시절이란 불어, 서유럽에서 1차대전 직전까지 오랜 안정기로 미래에 대한 낙관론이 팽배하던 시기)였다고나 할까.

이로부터 2~3년 지나면,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저력’, ‘힘을 모읍시다’, ‘국난을 헤쳐....’와 같은 문구가 많이 등장한다. 당연히 외환위기의 영향이다.

이때 LG는 ‘세계 최고수준의 기업이 된다는 명확한 목표를 정했다’라고 한다. ‘지금의 우리 역량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LG그룹이 어떤 그룹인가. 그 무한경쟁의 소용돌이라는 재계에서도 2019년 현재까지 국내 4대 대기업 그룹에 꼽히는 거대 기업 집단 아닌가. LG는 누가 봐도 명실상부하게 성공한 기업 집단이라고 봐야 옳다. 게다가 LG가의 과거 ‘독립운동 지원’ 이력과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까지. 모범적이고도, 안정적으로, 크게 성장한 그룹임에는 틀림없으나….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순간 미묘한 문제가 생긴다.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면 당연히 국내에서부터 최고의 기업이어야 하는데…. 일단 현재 LG그룹이 뛰어든 분야는 대표적으로 전자, 뷰티, 종합상사, 식음료, 통신, 스포츠 등이 있다.

▲그러니까 이중에 자기 분야에서 세계, 아니 국내 최고의 기업을 꼽아보자면...(출처=LG그룹 홈페이지 캡처)
▲그러니까 이중에 자기 분야에서 세계, 아니 국내 최고의 기업을 꼽아보자면...(출처=LG그룹 홈페이지 캡처)

이 분야들에서 국내 최고 기업을 꼽아보자면, 전자는 삼성, 뷰티는 아모레퍼시픽, 종합상사는 포스코인터내셔널, 식음료는 롯데, 통신은 SK, 야구는…. 아니, 야구는 해마다 바뀌는 거니까 빼자. 여담이지만 이 광고가 게재될 때 LG트윈스는 한국시리즈 우승팀이었다.(얄궂게도 그 이후로 LG가 1위가 되는 일은…)

LG그룹은 각 분야에서 상당한 규모를 갖춘 회사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회사 모두 무시 못 할 저력을 갖춘 것은 틀림없다...만 모두 최고라고 하기엔 한 끗이 부족한 회사들이다. 이 그룹의 DNA인 것일까?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예언 자체는 맞아들었다. 정말로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등장한 것이다.

▲'세계 최고의 기업이 나온다'가 여기 써있었으면 레전드였을텐데...
▲'세계 최고의 기업이 나온다'가 여기 써있었으면 레전드였을텐데...

◇삼성전자...꿈★은 이루어진다

‘2000년, 세계 초일류기업을 목표로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라고 한다. 이 광고도 역시 ‘벨 에포크’ 시대의 향기가 느껴진다. 진로그룹은 대대적 사업확장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앞서 LG는 창립 70주년을 맞아서 그런 거창한 문구들을 담은 광고를 냈다. 그럼 삼성은 무엇을 계기로 이 광고를 냈을까?

광고 약 1년 전, 삼성은 그룹 역사의 변곡점이 되는 사건을 맞는다. 1993년 6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든 걸 다 바꿔보라”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바로 그것이다. 오너의 그룹 사활을 건 혁신에 대한 주문에 삼성 그룹의 모든 계열사는 뼈를 깎는 쇄신을 필요로 했다. 삼성전자의 ‘제2의 창업’론도 이같은 쇄신의 일부였다.

광고 속에 보이는 인물들 중에서 지금의 삼성전자의 기틀을 잡은 이들이 보인다.

4메가(Megabit) D램을 만들었다는 반도체연구분야 박사는… 그렇다. 경기도지사에 출마하기도 했던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다. 대한민국 1호 국비장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기도 한 그는, 삼성전자의 신화 속 인물과 다름없다. 이 광고에서 진대제 박사가 도전하는 중이라는 16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한 것은 물론, 64메가, 128메가, 1기가바이트 D램 개발에도 성공하며 35세에 삼성전자 이사, 44세에 부사장 자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휴대용 자동통역기를 개발하고 있다는(이건 좀 무리수였는지 정말 머나먼 훗날에나 개발, 아니 현재까지도 그리 완전하게 개발하지 못 했다.) 임형규 박사 역시 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역이다. 삼성반도체의 공채 1기로 입사한 그는 삼성전자 전사의 기술개발을 총괄하는 최고기술경영자(CTO)자리를 거쳐 사장직에까지 오르게 된다.

2000년의 삼성전자도 대단한 기업이었음에는 틀림없으나, 그때까지는 아직 ‘세계 최고’라고 보긴 어려웠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는건 그로부터도 10여 년 정도 더 뒤의 일이다. 위의 인물들을 비롯해 황창규, 권오현, 신종균어벤져스급 인재들이 갈아 넣어진(?) 덕에 말이다.

그 누가 상상했으랴.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는 꿈을 이루는 기업이 정말로 등장할 것이란 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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