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을 앞두고 서로 다른 정당의 대표였던 이낙연·이준석 공동대표가 신(新)개혁신당으로 모이면서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이 재차 소환됐다. 이념이 다른 정당에 있었기에 ‘반윤·반명 연합정당’, ‘연합군’, ‘잡탕정당’ 등 다양한 말로 불린다.
하지만 개혁신당 측은 대한민국 정치권 연대 성공 사례인 ‘DJP연합’에 가깝다고 한다. 김용남...
이낙연 전 대표는 ‘세대 간 통합’, ‘DJP 연합보다 가까운 거리’ 등을 언급하며 이준석 전 대표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에 반해 이준석 전 대표는 “다른 세력들의 차이점을 무시하고 구심력으로 묶을 정도의 중력이 되느냐. 그러니까 그 질량이 되느냐는 우선 앞으로 살펴봐야 될 것 같다”며 야권 신당 세력과의 연합에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뜻을 같이 한다면 함께 할 수 있다”면서 보수-진보의 거리감에 대해선 “DJP연합보다는 훨씬 거리가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도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악의 정부로 기록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하며 썩은 나무로는 조각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인 공자의 말씀인 ‘후목불가조(朽木不可雕)’를 언급하며 “지금의...
이 대표는 "이번에는 과거 DJP 때처럼 접점을 만들고 인사 교류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며 "DJP는 연합 정부, 공동 정부가 어울리지만 지금의 양당은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그간의 교류가 적었다"고 말했다.
인수위가 발표한 내각이 '구시대적' 인선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국정 운영은 모양새를 좋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성과가...
정권 초기 국무총리 부담 커질 수도과거 DJP가 예시…자기 세력 만들 듯이준석 여론 안 좋아…당권부터 잡을까백지신탁 우려한 선택이라는 분석도
안철수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차기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고사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공동정부 구성을 약속했지만, 예상과 달리 인수위 활동에 집중하기로 했다. 초대 국무총리가 정치적 부담이 크고...
또 DJP 정부처럼 총리가 장·차관에 대한 임면권을 행사하는 등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면 책임 총리의 의미를 구현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의 행보에도 이목이 쏠린다. 5선 국회의원에 전남도지사·국무총리·당대표를 역임한 이 전 대표로선 ‘정계 은퇴’와 ‘대권 재도전’ 외 다른 선택지를 찾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 전...
1997년 대선 때 DJ는 DJP연대로 39만 표 차의 신승을 거뒀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도 절반은 성공한 사례다. 선거 전날 정 후보가 지지를 철회, 단일화가 깨졌지만 위기감을 느낀 친노 결집으로 노 후보가 승리했다. 어쨌든 단일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2012년 문재인-안철수 사례도 있지만, 무늬만 단일화였다. 두 후보가 단일화 방식을 놓고...
단일화는 대선 후보 간 결단이라는 윤 후보의 발언에 대해선 “(윤 후보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얘기했는데 (단일화가 이뤄지려면) 조용히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했다”며 "그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단일화 시기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투표 시작할 때라는 분도 있고 투표용지...
일명 ‘DJP 연합’으로 불린 두 후보의 단일화는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될 시 김종필을 국무총리로 임명하고 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이 함께 내각을 구성한다는 등의 합의로 성사됐다.
반면 초반 지지율 1위로 당선이 유력하다고 평가받던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독자 출마한 이인제 국민신당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끝끝내 이루지 못해 불리한 상황에...
안 대표도 거기에는 동의를 했다"며 "과거 DJP 연대하듯이 세력 대 세력을 서로 연대를 해서 공동 정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날에도 홍 후보는 기자들과의 티타임에서 "최종 후보가 될 경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도 세력 연대를 추진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승민·원희룡 후보도 안 대표와 단일화를 강조했다. 유 후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합당 무산과 이후 야권 통합과 관련해선 "안 대표는 어차피 단독 출마는 안할 것"이라며 "제가 당 후보가 되면 안 대표와 합당을 하지 않더라도 과거 DJP와 같이 세력간 연대로 정권 탈환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하 홍준표 의원 출마선언문 전문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저는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대선 후 탈당해 김종필 전 총리 중심의 자민련 총재를 지냈다.
이른바 'DJP연합'으로 출범한 김대중 정부에서는 김종필 박태준 전 총리에 이어 3번째로 총리직을 맡았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인사청문회를 통해 임명된 국무총리였다.
2002년에는 '하나로국민연합'을 창당,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한나라당에 복당한 뒤 정계를 은퇴했다.
13대 4당구도는 1990년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인위적 3당 합당(민주자유당)으로 양당구도로 회귀했고, 15대의 3당체제는 1997년 DJP연합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후 19대까지 양당구도가 이어졌다. 20대 3당체제는 양당제의 대결정치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었다. 3당에 캐스팅보트를 줌으로써 양당의 소모적 정쟁에서 벗어나 일하는...
김정현 대안신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한국당이 의원 꿔주기의 원조는 DJP연합이라고 둘러댔으나 궤변이다"며 "DJP연합은 집권 후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동정부 형태로 정권을 유지했던 연정이지 한국당 위성정당처럼 표를 얻어보겠다는 꼼수와는 다르다"고 했다. 선거 연대 측면에서 미래한국당과 당시 DJP연합의 취지가 질적으로...
추 대변인은 “(김 전 총리는) 5·16 쿠데타의 주역으로 부상해 ‘3김 시대’를 거쳐 ‘DJP연합’까지 이어진 그야말로 영욕으로 점철된 삶이었다”라며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질곡마다 흔적을 남긴 고인의 기억은 사료와도 같은 가치가 있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추 대변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김종필 전 총리까지 세상을 떠남으로써...
1997년 대선에선 자신이 창당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다시 대권에 도전했으나 선거 막바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주도하며 김대중 당시 후보를 지지하며 또 한 번 실패를 경험, 당시 두 번째 국무총리를 지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2001년 9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둘러싼 지속된 갈등 끝에 DJP연합은 붕괴됐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장 대변인은 김 전 총리에 대해 “고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DJP연합을 통해 ‘국민의 정부’ 출범에 큰 기여를 하셨고, 두 번의 국무총리를 역임했으며, 9선의 국회의원으로서 국가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온 한국현대사의 거목”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산업화, 민주화시대로 이어지는 세월동안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시대’를...
1992년 대선에서는 3당 합당과 함께 김영삼 당시 대선 후보를 지원, 1997년 대선에선 자신이 창당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다시 대권에 도전했으나 선거 막바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주도하며 김대중 당시 후보를 지지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자민련 참패의 책임을 지고 은퇴를 선언, 영원한 2인자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국민의당이 외연을 확장하는 것을 소위 적폐세력론, 정권교체론, 이런 프레임을 걸어서 막고 있었던 것”이라며 “DJP 연합을 생각을 해보라. JP는 박정희와 같이 DJ를 죽이려고 했었던 사람 아니냐. 그런데 DJ가 JP하고 연합을 해 정권을 만들었다”고 예를 들었다.
그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게 마지막에 깨졌지만 정몽준하고 단일화해서 양강 구도 만들었던 거...
그는 97년 DJP 연합과 2001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를 언급하면서 “이번 단일화는 (과거보다) 명분이 있는 단일화이고 국민이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2005년 노무현 정부의 대연정 형식은 생각하지 않는다”며 연정에는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어 ‘대선 이후 보수정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질 것을 생각하고 이후에...